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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가 없는 게 아니라 찾지 못하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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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성균관대 석좌교수

인재를 제대로 등용하지 못하고, 나라 경제가 윤택하게 돌아가게 하지 못하면 만 가지를 잘하더라도 훌륭한 지도자라고 칭찬할 사람은 없습니다. 공자와 맹자가 요순(堯舜)시대를 동양의 이상사회라고 입이 닳도록 거듭 찬탄했던 것은 바로 용인(用人)과 이재(理財)가 잘되었기 때문입니다.

 조선 500년 동안 이런 통치 원리에 가장 밝았던 사람의 한 분이 바로 다산 정약용이었습니다. 다산은 『목민심서』 ‘이전(吏典)’에서는 용인을 집중적으로 논했고, ‘호전(戶田)’에서는 이재에 대해 상세히 논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용인 문제가 하도 엉망이기에 이전(吏典)을 살펴봅니다. 이전에는 용인(用人)과 거현(擧賢) 두 항목을 두어 어떻게 인재를 등용하고 어진 이들에게 국정을 맡을 수 있게 할 것인가를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다산은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사람 쓰기에 달렸다(爲邦 在於用人)”고 선언하고는 사람을 제대로 고르는 방법부터 제시했습니다. “아첨 잘하는 사람은 충성스럽지 못하고, 간쟁(諫諍)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배반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귀로 듣기에 달콤한 말이나 잘하면 쓰지 말고, 쓴소리 잘하고 잘못을 강하게 비판할 줄 아는 사람을 골라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전제 아래 어진 이를 잘 골라내는 더 자세한 방법을 거론했습니다. “무릇 천하를 다스리는 데는 큰 원칙이 네 가지가 있다. 첫째 친족을 친애하고, 둘째 어른을 어른으로 대접하고, 셋째 귀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며, 넷째는 어진 이를 어진 이로 대하는 것이다.”

 주변의 가까운 사람이나 훌륭한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소통이 제대로 돼야 훌륭한 인재를 천거받고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우리 정부는 소통은커녕 사방을 차단하고 인사를 하니 참 인재가 등용되겠습니까.

 국무총리를 해임하기로 했다가 후임자를 고르느라 애를 썼지만, 두 후보자까지 중도에 사퇴하자 되돌려서 그만두겠다는 총리를 다시 일하도록 조치한 인사 참사로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인재 발굴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런 비정상적인 인사가 어떻게 가능할까요. 세월호 참사, 그 억울하게 죽어간 아까운 생명들을 구해 내지 못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총리, 그를 다시 총리직에 두었으니 도대체 책임은 누가 지겠다는 건가요.

 책임지고 물러나겠다고 해놓고 무엇 하나 책임진 것도 없이 다시 하란다고 되돌아 앉은 사람도 얼굴이 두껍지만 그런 사람을 다시 시키는 인사권자의 비정상적인 행위는 어떻게 설명할까요. 정말로 말문이 막힙니다.

 인재를 찾기 어려워 도로 그 사람을 써야겠다는 무책임한 발언을 들으면서 다산의 인재등용에 대한 논의가 생각났습니다. “인재를 얻기 어렵게 된 지가 오래입니다. 온 나라에서 훌륭한 영재를 발탁하더라도 오히려 부족할까 두려운데 하물며 8~9할을 버려야 되나요. 온 나라의 백성들을 모두 모아 배양하더라도 진흥시키지 못할까 두려운데 하물며 8~9할을 버린단 말입니까. 일반 백성들이야 버림받은 사람들이고 중인(中人)들이 그중에 버림받은 사람들입니다. 평안도와 함경도 사람이 버림받은 사람이고 황해도·개성·강화도 사람들도 그중에 버림받은 사람들입니다. 강원도와 전라도의 절반은 버림받았고, 서얼들이 버림받았으며, 북인이나 남인은 버린 것은 아니나 버린 것과 같습니다. ……. ‘통색의(通塞議)’

 신분과 지역을 차별하여 국민의 대부분을 버려놓고 인재를 구한다는 당시의 막힌 사회를 비판한 다산의 글은 매섭습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은 다산의 그 비판을 그대로 인용해도 무엇 하나 어긋나는 대목이 없습니다. 국가 고위 공직자 서열 10위권에서 8위까지 경남·부산이 독차지해 다른 지역 8~9할은 버린 셈인데, 어디서 올바른 인재를 구할 수 있겠습니까. 강원도와 전라도는 인구라도 적지만, 서울과 경기의 광대한 지역은 왜 버린 것처럼 놓아두어야 합니까. 야당이나 진보 쪽이야 애초에 버렸으니 할 말도 없습니다.

 다산은 막힌 곳을 뚫어 소통이 된 뒤라야 인재를 제대로 고른다고 ‘통색의’라는 제목의 글을 썼습니다. ‘수첩’은 제발 버리고 청와대의 문도 활짝 열고 인사권자의 마음까지 온전히 열어 지역부터 깨고 정파나 학연, 나아가 이념까지 타파한 뒤에도 총리감 하나 못 구할까요. 그러지도 못하면 인사권자의 권한을 내려놓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닐까요.

 나라 전체로 보면 훌륭한 인재들이 수두룩합니다. 그런데 검증이 까다롭다면서 검증에 걸릴 만한 사람들만 ‘수첩’에서 꺼내 인사를 단행하니 제대로 될 리 있겠나요. 200년 전 다산이 주장한 인재 발탁의 문제점들을 다시 한번 점검해 봐야 합니다. 아첨하는 사람보다는 간쟁하는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한정된 ‘수첩’과 차단된 범위를 초월해 진짜 인재들을 등용해야 합니다. 요즘처럼 정보통신이 발달한 시대에 참 인재를 찾을 수 없다니 뭔가 크게 잘못되었습니다. 다산의 ‘통색의’를 면밀하게 다시 읽어 대통합·대탕평의 인재 발굴이 이뤄지길 기대해 봅니다.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성균관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