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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제헌절, 헌법 교육부터 다시 시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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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정재황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법무부 헌법교육강화 추진단장

올해 제헌절을 맞는 감정은 자랑스럽기보다 참담하다. 인간 생명이 무엇보다 존귀하다는 헌법의 근본 가치를 처참하게 파괴한 세월호 사건이 아직도 가슴을 찢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 제10조는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 헌법 제34조와 10조에는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런데 이 헌법 조항이 세월호와 함께 바다로 가라앉아 버린 것이다.

 우리 헌법은 인간의 존엄성을 최고 가치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세월호 사건에서 이 헌법 가치는 철저하게 짓밟혔다. 세월호 선장은 소중한 생명들을 버리고 자신만 먼저 배 밖으로 나왔다. 참사의 뒤편엔 인간 생명보다 이익을 우선 챙기려는 구조적 비리가 있었다. 국가는 사고 초기부터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결국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지 못했다.

 조작된 서류를 보고 운항 허가를 내주고, 선박 안전검사도 대충 하고, 구조를 위한 직접 교신조차 시도하지 않는 등 이번에 벌어진 행태를 보면 이들이 인간 생명을 얼마나 가볍게 여겼으면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분노가 치민다.

 세월호 참사의 구조적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이른바 ‘관피아’ 문제도 헌법 정신을 저버린 것이다.

 헌법 제7조는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공무원들에게 어느 누구의 이익만을 위해 활동해서는 안 되고 국민의 봉사자로서 공정한 공무수행을 명령하는 것이다. 만약 공무원이 부정한 청탁을 받고 업무를 공정하게 수행하지 않는다면 이는 헌법 제7조를 어기는 것이다.

 이처럼 헌법은 세세한 일상사에 이르기까지 근본적인 지침을 주고 있다. 그런데 세월호 사건에선 헌법 정신이 철저하게 유린됐다. 세월호의 선주, 선장, 선원은 물론 관련 공무원들의 머릿속엔 애초부터 헌법적 가치가 입력조차 되지 않았을는지 모른다. 헌법의 가치와 질서가 이들에게 각인돼 있었다면 참사를 막았거나 적어도 피해를 최대한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헌법학자로서 이번 제헌절이 부끄럽게 느껴지는 이유다.

 세월호 사고가 난 지 3개월이 지났지만 별로 달라진 것은 없다. 그렇다고 마냥 분노와 슬픔으로만 지새울 수는 없다.

 새롭게 일어나 국가를 개조하려면 지금이라도 헌법 가치와 질서를 지키도록 하는 헌법의식의 재인식과 확산이 필요하다.

 헌법 가치와 법질서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는 것은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안녕을 지키기 위한 절박한 과제다. 더 이상 미적댔다가는 제2, 제3의 세월호 참사가 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헌법 가치를 훼손하거나 법질서를 무너뜨리면 처벌된다는 인식이 어릴 때부터 몸에 배도록 교과과정에서 충실히 가르쳐야 한다.

 초등학교에서부터 헌법 가치를 몸에 익히도록 교과과정을 편성하고 교과서에 이에 관한 내용을 충분히 담아야 한다. 현행 고등학교 교육과정엔 ‘법과 정치’라는 과목에 법 교육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헌법 가치는 이 세상 모든 생활영역의 기초가 된다. 따라서 특정 과목에 단순히 헌법의 내용만 소개하는 데 그쳐선 안 된다. 모든 교육과정의 근간에 헌법 정신이 녹아있어 학생들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체화시키도록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헌법 제11조 평등권 규정은 누구든지 정치적 영역뿐 아니라 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않는다고 돼 있다. 헌법의 평등권 정신이 지켜지려면 정치·경제·문학·예술·체육을 가르칠 때도 기초가 돼야 한다.

 법이 지켜지지 않으면 인간의 존엄성과 질서가 무너진다. 그래서 법을 위반하면 제재를 받는다는 점을 인식하도록 어릴 때부터 교육시켜야 하는 것이다. 교육 방식도 헌법의 이념과 제도, 헌법 정신이 생활 속에서 구체화되는 헌법질서를 모든 교과서에 넣어서 가르쳐야 한다.

 공교육에서 충분히 교육시켜 헌법 정신을 몸에 익히도록 만들지 않으면 한국의 미래, 우리의 법치주의는 희망이 없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선도하기는커녕 따라가지도 못할 것이다. 교과과정을 정하는 데 각 영역들 간의 조정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분야에서 법과 질서는 필요하다. 특히 헌법은 개인 생활뿐 아니라 사회 모든 영역에서 지침을 주는 최고 법이다. 헌법 가치와 이념을 교육시켜야 할 필요성은 너무나 자명하다. 세월호 사고 이후 정부는 국가시스템을 개조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국가개조가 성공하려면 단순히 조직을 개편하고 제도를 손질하는 데 그쳐선 안 된다. 국가시스템의 혁신도 헌법 정신의 발현, 헌법 준수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게 가능하려면 헌법 가치에 대한 교육을 서둘러 강화해야 한다.

 헌법상 권리와 의무를 교육을 통해 모든 국민이 숙지하면 남의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지 않을뿐더러 내 권리가 침해받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더 이상 고귀한 생명이 희생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 때 제헌절을 부끄럽지 않게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정재황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무부 헌법교육강화 추진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