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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옥문앞에 환성과 성가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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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옥문앞에는 성가와 환성이 가득했다. 환한 웃음과 기쁨의 눈물이 서로 엉켰다. 「대통령긴급조치제9호」가 역사의 뒷장으로 묻히던 날, 전국의 교도소와 구치소문앞에는 자유의 물결이 울렁거렸다. 긴급조치9호 위반자의 석방은 이조치가 해제(8일0시) 되기 수시간 전인 7일밤부터 이뤄졌다. 미결수를 먼저 풀어줬다. 8일새벽 4시이후 석방될 것이라는 소식에 가족들이 마중하지 못해 7일밤 옥문을 나선 이들은 보도진들만이 지켜보는 가운데 출감하기도 했다. 출소학생들은 솜바지·저고리에 흰운동화를 신고 옆구리와 어깨에 두툼한 책보따리를 메고 있었다. 8일 새벽 전국의 교도소와 구치소엔 많은 환영인파가 붐볐다. 목사·신부들은 신도들의 뜨거운 영접을 받았으며 학생들은 스승과 동료친구들의 환성속에 출소했다. 텁수룩한 수염에 머리는 길었지만 밝은 표정이었다. 『복교·복직을 시켜준다니 정말 반갑군요.』 이들의 마음은 벌써 학교와 직장에 가있었다.

<서울영등포교도소>
함세웅신부(38·서울동부이촌석동 한강성당)와 안성열씨(40·동아투위)는 8일상오 신부·신도·친지들의 환영을 받으며 서울영등포교도소 문을 나왔다.
상오5시2분쯤 함신부는「로마·칼러·망토」에「베레」모를 쓰고 가슴에 꽃다발을 안은채, 안씨는 잿빛 바지에 검은 가죽「점퍼」를 입고 건강한 모습으로 만면에 웃음을 띠고 나왔다.
한강성당신자들은 이들이 교도소문을 나서자 박수로 출감을 축하했다.
구속된지 14개월만에 석방된 안씨는 『출감 소식은 7일밤 10시10분쯤 알았으며 옥중에서도 「뿌리」등을 읽으며 영어공부를 했다』며 한시바삐 복직되기를 희망했다.
이에앞서 함신부와 민주회복운동을 함께했던 김숭경씨 (54·충남천안시오룡동40의1)는 7일밤 11시25분부터 교도소정문을 지켰으며 함신부와 안씨의 가족·친지들은 8일 새벽4시15분쫌 교도소에 나타났다.
함신부의 어머니 전영옥씨(70)·한강성당 신자대표 이건호박사(63·이대 대학원장)·추기경비서 이선표신부(33)등 1백여명의 신부·신자들은 7일 한강성당에서 기도로 밤을 새우고 통금이 풀리자마자 3대의「마이크로버스」·승용차등을 나눠타고 교도소로갔다.
함신부 어머니·윤주병신부(38)·김세바스티안수녀(40)등 6명이새벽4시33분쯤 교도소측의 안내로 함신부의「로마·칼러·망토」·꽃다발을 들고 교도소 안으로 들어갔으며 20분쯤 뒤 안씨의 부인 백귀숙씨(42)등 2명이 안씨의 옷보따리를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새벽4시48분쯤 윤신부등 4명이 함신부의 침구등을 들고 나왔으며 교도소측은 보도진을 따돌리기 위해 용산경찰서 소속 서울3다6108호「제미니」승용차를 교도소안으로 불러들여 함신부를 출감시키려했으나 내외보도진 및 친지들이 길을 비켜주지 않아 단념했다.
출감한 함신부는 한강성심병원으로 직행해 신자들의 축복속에 특별감사 「미사」를 드렸다.

<서울구치소>
서울구치소에서는 7일밤 8시10분쯤 회색바지·흰저고리를 입고 흰운동화를 신은 조범원씨 (48·탁아소경영)가 가강 먼저 혼자 석방됐다.
조씨는 지난5월2일 김대중씨 출소요구 유인물사건으로 구속돼 징역 2년6월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다.
구치소문을 나선 백씨는 마중나온 가족을 찾는듯 두리번거리다 석방사실을 몰라 아무도 나오지 않은 것을 알고는「택시」에 짐을 싣고 집으로 떠났다.
전국회의원 비서관이었던 이창식씨(47·광산업)는 미리 마중 나와있던 동서등 친지의 품에 얼굴을 파묻고 말을 잇지 못했다.
밤9시쯤 박종혁(20·고대국문과2년) 명재욱(20·고대사회학과2년) 박선오(21·고대사회학과3년) 이경재(21·고대행정학과3년) 임건묵(18·서울대인문대1년)군등 학생5명이 한꺼번에 석방됐다.
모두 책보따리를 한아름씩 어깨에 메고있었으며 밝고 건강한 모습들이었다. 5분후인 밤9시5분쯤 백완승양 (22·고대신문방송학과4년)이 마지막으로 석방됐다.
백양은 문을 나서며 『엄마가 안나오셨네』라며 서운해하다가 미리 석방돼 기다리던 후배들이 『누나, 고동안 고생하셨어요』하며 짐보따리를 받아주고 위로하자 스스럼없이 순간적으로 왈칵 부등켜안고 좋아했다.

<서울영등포구치소>
김상복군(25·중앙신학대3년)을 선두로 7일밤 7시45분부터 차례로 1시간42분만에 7명이 서울영등포구치장문을 나섰다.
밤8시쯤 성유보(35·동아투위) 송주빈(54·전통일당원·충남대덕군동면주산리151) 김용훈(27·전국회의원비서·충남논산읍우월동l62)씨등 3명이 가족들과 연락이 안돼 구치소 정문을 쓸쓸히 나섰다.
송씨등은 근처 선술집으로 가 돼지볶음을 안주로 막걸리 두되를 마신후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갔다.
『역사는 올바른 방향으로 흐른다』며 「택시」를 탄 성씨는 밤9시50분쯤 서울도곡동 제2「아파트」26동107호 자택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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