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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은 환영하지만 꿔주긴 꺼려|서민 외면하는 시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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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집안에 급하게 돈이 필요해도 은행을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예금은 은행에가서 하는 것으로 알고있다. 우리나라 은행이 예금만 받고 돈을 빌려주지않는 일방통행식이되어버린 것이다.
사설금융의 횡포가 번번히 사회문제를 일으켜도 가계의 자금융통은 비싸고 위험한 사채에의존할 수밖에 없다.
최근 1천만원 미만의 사채금리는 월5% 안팎. 은행대출금리가 월1.6%도 채 안되는 것에 비하면 엄청난 격차다. 공금융의 길이 막혀있다는 증거요, 우리나라 금융제도의 왜곡된 단면이기도 하다.
특히 금융기관의 핵이랄수 있는 시중은행에서 일반가계대출을 받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은행예금의 절반이 가계예금으로 모여진 것인데도 대출은 기업한테로 간다. 결국 일반가계는「인플레」에도 못미치는「마이너스」이자를 받으면서 은행에 예금하고 정작 돈이 필요할땐 3배이상이 비싼 사채에 매달려야 하는 이중의 피해를 받고있는 셈이다.
반면 이같은 가계희생의 댓가로 월0.75%밖에 안되는 수출금융을 비롯해서 값싼 은행돈은뭉치째 기업들에 풀려나간다.
「샐러리맨」들이 집장만할때 요긴하게 쓰는 주택자급대출의경우 지난해 3백만원에서 올부터는 집값 오른것을 감안해 5백만원으로 올리기로 규정을 바꿨지만 실제로는 2백만원으로 오히려 깎아버렸다.
10년전에는 70만원이었던 주택자금만 얻으면 20평짜리 집값의 3분의1가량 되어 집사는데큰도움이 됐지만 지금은 그 10배로도 태부족이다. 그나마 주택자금 2백만원을 대출받으려면6개월전부더 80만원짜리 적금을 들어 꼬박꼬박 부어야하고 「선착순」을 기다려야한다.
서민금융의 제도적 장치가 비교적 잘되어 있는 국민은행의 경우는 돈이 있어도 대출한도에 묶여 돈을 못빌려 주고 있다.
일반 서민들로부터 한푼두푼 모은 예금이지만 여신한도에 묶여 예금받은돈의 절반정도 밖에 대출못하고 있다.
그나마 국민은행에 예금이 많이 몰리는것도 시중은행에 비해 예금한 사람이 대출받는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예금자에게 대출하지 못한 나머지 돈은 시중은행들에 빌려준다.
주택은행의 주택자금이나 농협의 농사자금들도 마찬가지 경로로 전용되고 있다.
국민은행의 상호급부금적금대출은 예금자와 은행간에 쌍무계약형식을 취하고 있어 부금의 3분의1을 납입하면 은행이 의무적으로 부금 전액까지 대출을 해주도륵 규정하고 있지만 이것 역시 전체 여신한도 때문에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약속위반이다.
당국은 긴축때문에 한도규제가 불가피하다고 변명하지만 경작「인플레」적인 자금은 서민들의 생계나 집장만에 융자해주는 1백만∼2백만원의 소액대출이 아니라 오히려 기업대출 쪽이 더 가깝다.
「신용상태」를 말하더라도 은행돈 빌어가서 제때에 안갚는 쪽은 서민들이 아니라 기업들이다. 은행별 연체율을 보면 서민금융 전담은행인 국민은행이 0.84%에 불과한데 비해 기업대출만 상대하는 시중은행의 연체율은 평균 5%선에 이르고 있다.
더우기 자금별 연체율로는 수출금융이 5.9%로 가장 높게 나타나 결국 은행은 제일 싼 이자로 빌려주는 돈을 제일 많이 떼이고 있는 셈이다.
금년부터 3백만원 이하의 소액대출에 대해서는 복잡한 감정절차를 일체 생략한 국민은행의연체율은 가장 낮은 반면, 여전히 복잡한 서류절차와 까다로운 의무조항을 요구하는 시중은행의 연체율이 가장 높다는 사실에서도 스스로의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일반시민들은 예금을 맡기는 대신 급할때는 돈을 빌어쓸 수 있는 「친밀한 시중은행」을기대하고 있다.<이장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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