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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단의 순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역사는 두 순간을 놓고 숨가쁜 고비를 넘겼다. 1979년10월26일 하오7시43분부터 8시5분 사이, 그날을 넘기는 넘기는 자정무렵의 50분. 이 두 순간의 길이는 모두 합쳐 72분밖에 되지 않는다.
초저녁, 서울의 도심을 질주하던 한대의 승용차가 나산기슭의 갈림길에서 만일 좌회전을 했다면 역사의 장면은 지금의 그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재규가 탄 자동차는 그의 집무실이 아닌 육본으로 향했다. 실로 역사의 갈림길이었다고나 할까.
또 한번의 순간이 있었다. 27일 0시40분. 국방부청사후문에서 김재규를 체포하는 상황이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그후의 현실은 상상을 절한다.
역사는 이처럼 한순간의 긴장과 그판단의 지배를 받는다는 생각은「아이러니」를 넘어 희화같기만 하다. 그러나 이것은 웃지못할 엄숙한 현실이기도 한것이다.
위기를 영어로는「크라이시스」라고 한다. 이말의 어원이「결단」에서 비롯된것은 새삼「위기」의 긴박감을 더해 준다. 역사는「결단」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스탈린」사후의 소련은 잠시 권력투쟁의 위기를 겪었다. 비밀경찰을 장악하고 있던「베리야」는「스탈린」의「바통」을 이어받으려고 치밀한 계획을 세워 한단계, 두단계 접근하고 있었다. 그러나 소련의 군부를 배경으로한「말렌코프」·「불가닌」·「흐루시초프」등 이른바 연합세력은 숨돌릴 사이도 없이「베리야」를 암살해버렸다.
만일 그것이 실패했다면 소련의 역사는 물론 현대사의 한「페이지」도 달라졌을지 모른다.
미국의 3대대통령「T·제퍼슨」은 하원에서 대통령을 선출할때 불과 1표차로 당선했었다.「테네시」주의 한 의원이 마지막 순간에 그에게 표를 던졌다.
이른바「쿠바」위기도 있었다.「케네디」와 그의 참모들은 l962년10월 어느날 밤을 새워가며「쿠바」위기를 놓고 소련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었었다.
만일 소련이「케네디」대통령의 미숙한 군사지식을 오판, 작전명령을 내렸다면 필경 세계대전의 불바다속에 지구는 진통을 겪었을 것이다. 그러나「케네디」는 그때 결단에 서슴지않고 소련에 도전했었다.
―『언제나 순간을 놓치지 말라. 어떤 상황이든, 어떤 순간이든 그 하나 하나가 영원의 표시로서 무한한 가치가 있다』시성「괴테」의 말이다.
우리는 한순간이라고 소흘히 말고, 그인생의 국면·국면 그 모든 순간들을 성실하고 값있게 직면하며 살지않으면 안된다. 한순간 속에서도 장엄한 삶을 찾을수 있는 것이다.
생각하면 순간순간이 숨막히는 12시간이었다. 그동안 불과 몇사람의 결단과 망설임에 의해 민족의 엄청난「드라머」가 전개되어나갔다.
생각할수록 아찔해지는 한밤이었다.
다시는 한두사람에 의해 겨레의 운명이 결정지어지지 않은 앞날을 위해서도 그때의 한순간한순간을 올바로 기록해둬야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뭣보다도 대통령을 시해한 암살자를 국헌문란범으로서 체포키로 결심한 노국방및 정총장의 결단이, 혼란과 파국을 향해 치닫을 뻔했던 역사의 흐름을 바꾸게 한 것을 다행으로 여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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