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월드컵] 홍명보 떠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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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감독은 월드컵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표팀 지휘봉을 놓기로 했다. [중앙포토]

홍명보(45) 축구대표팀 감독이 자진 사퇴한다. 홍 감독은 10일 오전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표팀 사령탑 사퇴를 발표하기로 했다. 지난 3일 허정무 축구협회 부회장이 “홍 감독이 내년 1월 호주에서 열리는 아시안컵까지 임기를 채울 것”이라고 발표한지 일주일 만이다. 홍 감독은 9일 본지와 전화통화에서 “축구협회 요청으로 지휘봉을 내려놓지 못했지만,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홍 감독은 브라질월드컵 1무2패로 1998 프랑스월드컵 이후 최악의 성적을 냈다. 대외적으로는 거취를 분명히 밝히지 않았지만 축구협회에 두 차례에 걸쳐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 지난달 27일(한국시간) 벨기에전을 마친 후 사퇴 의사를 전달했고, 지난 2일 정몽규(52) 대한축구협회장과 면담에서 다시 한 번 뜻을 밝혔다. 그러나 정 회장이 홍 감독에게 “1년이라는 짧은 시간 밖에 주지 못한 협회의 책임이 더 크다”는 집행부의 의견을 전달하며 사퇴를 만류했고 홍 감독도 이를 받아들였다.

 축구협회가 ‘포스트 홍명보’에 대한 대안을 준비하지 못한 점, 아시안컵이 6개월밖에 남지 않아 준비할 시간이 부족한 점 등도 고려 대상이 됐다. 지난 3일 허정무(59) 축구협회 부회장은 “홍 감독이 선수로서, 감독으로서 한국 축구에 남긴 발자국과 우리에게 선사했던 기쁨과 희망을 잘 알 것이다. 비록 월드컵에서 성적을 거두지 못했지만, 실패를 거울 삼아 아시안컵에서 우리 대표팀을 잘 이끌어줄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유임 배경을 설명했다.

 홍 감독이 일주일 만에 거취에 대한 태도를 바꾼 건 대표팀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거셌기 때문이다. 대표팀 최종 엔트리 선발부터 선수 기용까지 잡음이 많았던 데다 선수들의 열정을 잃은 듯한 플레이가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겼다. 대표팀은 지난달 30일 새벽 귀국하는 자리에서 굴욕적인 ‘엿 사탕 세례’까지 받았다. 대표팀 부진에 대해 축구협회에서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 상황도 홍 감독의 결단을 부추겼다. 허 부회장은 기자회견에서 “자리를 걸고 책임지는 분은 없느냐”는 질문에 “이번 월드컵의 진행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과정을 분석하고 있다. 그 결과를 토대로 대책을 마련하고 결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했다.

 월드컵 무대에서 실패한 감독 중에서 축구협회가 유임을 결정한 건 홍 감독이 유일했다. 차두리(34·서울)는 3일 자신의 트위터에 “98년에는 왜…? 혼자서…”라는 글을 남겼다. 1998 프랑스월드컵 때 차범근 당시 대표팀 감독이 성적 부진을 이유로 대회 도중 경질된 사례와 견줘 홍 감독을 유임한 축구협회의 결정을 에둘러 비판했다.

 축구협회는 홍 감독의 사임 발표와 함께 ‘후임 사령탑 선임’이라는 중요 과제를 떠안았다. 축구협회 관계자는 “기술위원회 개편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만큼, 최대한 빨리 감독 인선 작업에 돌입할 것”이라면서 “2018 러시아 월드컵을 내다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도자를 선택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지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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