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강보승 교수의 '나의 알코올 독성분해효소記'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한양대 구리병원 응급의학과 강보승교수


이십 년 만에 친구가 건넨 ALDH – 알코올 독성분해효소

“K가 나온다고?”

그를 마지막으로 본건 거의 20년 전 여름, 의대 마지막 학년쯤이었다. 학교 정문 근처에서 오랜만에 마주쳤는데 그때 그는 공대 대학원생이었다. 간단한 안부 끝에 나한테 질문을 던졌다.

“어느 분야의 약을 개발하는 게 앞으로 전망이 있겠어?”

뜻밖의 질문에 나는 잠시 병원 실습기억을 더듬어서 심장 부정맥 계통의 약물을 추천했다. 하지만 이런 질문은 K가 처음이었고 그 이후로는 아무도 이 같은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가 연말 동문회에 나온다니 이게 도대체 몇 년 만에 보는 건가 싶었다. 거의 연락이 두절됐던 옛날 친구들을 최근 하나 둘씩 조우하고 있었지만, K와는 연락이 닿질 않았다.

그와의 인연은 고등학교 2학년 때 같은 반 동급생으로 시작했지만, 사실 특별히 더 어울리거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항상 마음 한구석에 그의 소식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다.

“야, 정말 오랜만이다”

테이블에는 3명이 앉아 있었고 그 중 K가 있었다. 악수하고 명함을 주고받고 얼마나 변했는지 들여다봤다. 지난 이 십 년 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전부 묻고 싶었지만 그에게만 집중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미국에서 사업하다가 파산했는데 신용은 더 올라갔어,,.” “연방은행에서 6백만 불을 빌려줬는데,,, 대기업도 와서 물어보더라고 어떻게 돈 빌렸냐고” “요즘은 술 깨는 식품을 취급해”


그는 가방에서 귀엽게 생긴 작은 플라스틱 약통 두어 개를 주섬주섬 꺼냈다 ADH, ALDH 함유.

“ALDH가 뭐에 약자야?” “

“야, 너는 의사가 그것도 모르냐? 알데히드탈수소효소의 약자잖아”

나는 으레 시중에 널린 음주관련 식품을 취급하는구나.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수의사 친구가 말을 꺼냈다.

“어,, 야 이거 신기한데,, 좀 깨는 거 같아” “그래? 효과 좋네,,.”

K는 나한테도 약통을 건넸다. 생각보다 정교하게 만져지는 게 촉감이 좋았다. 교련 선생님께 맞아서 굴렀던 것, 학교 앞 호프집 누나 쫓아다닌 것 같은 얘기를 하다가 10시쯤 자리를 파했다.

헤어질 무렵 지하철역에서 아쉬운 악수를 하고 의례적으로 전화번호를 주고받고 집으로 오면서 그냥 드라이하게 헤어진 게 너무 찜찜했다. 난 스마트폰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조만간 다시 보자 2013년은 너무 뜻 깊은 해야 K를 다시 만날 수 있어서...”

그에게서 답이 왔다. “그렇게 생각해줘서 고마워 곧 다시 보자”

우리가 다시 만나건 해를 넘겨 1월 말. 둘이 만날 시간을 바로 갖으려했으나 도저히 시간이 나질 않았다. 연말연초라 모임도 많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북경 연수 가있던 절친이 코에 뾰루지가 났는데 한 달째 가라앉질 않는다는 거다.

“항생제 내성균인가?”

혹시 불안해서 잠시 귀국을 종용했다. 우리병원에 입원시키고 시험문제 출제 때문에 4박5일 합숙을 들어가서 연락이 두절됐다. 전화로 확인해 보니 암세포가 발견됐다. 부랴부랴 종양내과로 보내고..

나는 지난 20 년의 공백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으려고 그의 대학원 논문주제인 AIDS 치료제 개발부터 근황까지 마치 취조하는 형사처럼 물어봤다. S화학에서 촉매제를 국산화한 일, 대기업이 수입하던 당뇨약 원료를 미생물로 특허 받은 것. 비타민D와 밴코마이신을 국내로 들여오고 삼십대 중반에 일본 대기업 한국지사의 CEO로 수억의 연봉을 받던 일,, 그냥 일반 의사인 내가 보기에 그의 이력은 너무 화려해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근데 왜 갑자기 음주관련 식품을 취급하게 된 거야?” “효소는 직접 만든 거야?” “먹으면 위산에 부서지진 않아?” “효소 단백질이 클 거 같은데 장에서 흡수가 돼?”

2시간을 넘긴 나의 질문은 이제 막 시작에 불과했다.

[인기기사]

·“군의관 없이 의무병만? GOP 총기사망사고, 이미 예견된 일” [2014/07/08] 
·의사 취업·개업 시 범죄경력 조회 의무화 법안 발의 [2014/07/08] 
·병원간 의료정보 교류하는 플랫폼 구축한다 [2014/07/08] 
·이대목동, 주말 보톡스 클리닉 개소 [2014/07/08] 
·美외상시스템 예측 생존율보다 20% 높은 병원 있다? [2014/07/08] 

강보승 교수 기자 amsum@naver.com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위 기사는 중앙일보헬스미디어의 제휴기사로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중앙일보헬스미디어에 있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