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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이어 … 제조업 국가대표 현대차도 빨간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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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타도 삼성’.

 애플의 부품 공급업체로 성장한 대만의 훙하이(鴻海)그룹이 오랫동안 부르짖어 온 목표다. 행동도 민첩하다. 아시아퍼시픽텔레콤 투자로 통신업 발판을 마련했다. 구글과는 로봇사업을 제휴 중이다. HP와 클라우드 서비스 사업에도 나섰다. 이런 훙하이의 궈타이밍(郭台銘) 회장이 지난달 16일 한국에 왔다. 정보기술(IT)의 메카인 판교를 낱낱이 살폈다. 보름 후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보유한 SK C&C 지분 4.9%(3810억원)를 훙하이가 인수한다는 공시가 나왔다. 양측 이해가 맞은 것인데 뒷맛은 씁쓸하다. 최 회장은 당장 빚 갚을 돈이 필요하고, 궈 회장은 IT 분야 사업 확장을 노렸다. 업계 관계자는 “훙하이 입장에선 SK그룹에는 SK텔레콤·SK하이닉스 등 활용할 수 있는 기업이 많다”며 “C&C 지분 인수는 단순 투자 이상의 계산이 깔려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기업이 위기다. 훙하이 같은 추격자에게 목덜미가 잡힐 판이다. 기업을 이끌 리더가 없고, 미래 성장동력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 시장은 매력마저 잃고 있다.‘ 3무(無) 경제’다.

 ‘투 톱’부터 흔들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2분기 실적을 통해 가려졌던 민낯이 드러났다. 현대자동차의 2분기 실적 전망도 초라하다. 현대차 계열사인 HMC투자증권마저 현대차의 2분기 영업이익을 지난해 2분기보다 8.7% 줄어든 2조2000억원으로 본다. 증권가의 기존 전망보다 4~5% 낮다. 전재천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신차 효과가 환율에 무릎을 꿇었다”며 “통상임금 관련 노사 문제까지 있어 당분간 불확실성이 지속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뿐 아니다. SK그룹에선 하이닉스반도체를 빼면 돈 버는 회사를 찾기 어렵다. SK이노베이션은 2분기 적자가 확실시된다. 스마트폰 경쟁에서 밀렸던 LG는 여전히 뒤쫓느라 바쁘다. 롯데는 제2롯데월드에 발이 묶인 채 이렇다 할 신사업을 못 하고 있다.

 기업을 이끌 리더도 보이지 않는다. 10대 그룹 중 3곳은 총수가 부재 상태이거나 투병 중이다. 2곳은 사업 재편과 부실 정리를 하느라 미래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재계 관계자는 “굵직한 결정, 특히 해외 신사업은 손을 놓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새로운 ‘스타 기업인’의 출현도 종적을 감췄다. 리옌훙 바이두 회장, 마윈 알리바바 회장 등 새로운 리더가 끊이지 않는 중국과 대비된다. 금기현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 사무총장은 “스타 기업인의 기근은 결국 기업가 정신의 실종 때문”이라고 말했다.

 성장동력도 못 찾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후보자 측의 고민이 이를 방증한다. 후보자 측 관계자는 “기업이 ‘이런 사업을 하려고 하는데 이게 필요하다’고 제시하면 뭐든 도울 생각이 있다”며 “그런데 이런 사업 프로젝트를 딱 부러지게 얘기하는 기업이 없어서 오히려 고민”이라고 말했다. 미래의 발판이 될 현안 처리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현대차 충칭 공장이 대표적이다. 중국에서 연간 100만 대를 생산 중인 현대·기아차가 도약하려면 충칭 공장은 반드시 필요한 곳이다. 그러나 다른 지역을 원하는 중국 정부를 설득하지 못한 채 1년 가까이 지지부진이다. 반면 독일 폴크스바겐은 7일 중국 톈진과 칭다오에 20억 유로(약 2조8000억원)를 들여 새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중국 1위인 폴크스바겐은 현지 생산을 연간 400만 대로 늘리게 됐다. 워런 버핏이 투자한 중국 전기차업체 비야디(BYD)는 4월 전기버스를 시작으로 미국 전기차 시장에 발을 디뎠다.

 경제가 활기를 잃자 외국인의 한국 투자도 게걸음이다. 외국인 직접투자는 1999년 155억 달러를 돌파한 뒤 정체 상태다. 2012년 반짝 증가(163억 달러)를 빼면 10여 년째 한국은 매력 없는 시장으로 남아 있다. 투자를 부를 규제 완화는 끝장토론 등을 하며 반짝 관심을 받은 뒤 다시 수면 아래로 사라졌다. 오정근 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은 “일본은 아베노믹스를 통해 1분기 설비투자가 전년 동기비 7% 이상 늘어나는 효과를 냈는데 한국은 3년째 투자가 뒷걸음질”이라며 “환율·통화·재정 등 정부 경제정책이 실종상태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김영훈·김현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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