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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 이해하려면 60년대 외면해선 안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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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이문열은 『변경』 개정판을 낸 데는 문학평론가 김윤식의 격려가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변경』을 쓰기 시작한 지 28년 만에 완성한 그는 이어 1980년대를 다룬 연작 소설도 낼 계획이다. 평생을 함께 해 온 아내를 탐구하는 소설도 쓰고 싶다고 했다. [김상선 기자]

『변경』이란 대하소설이 있었다. 한국문단의 대표작가 이문열(66)이 격동의 1960년대 한국을 파노라마처럼 그려냈다. 그 스케일이 거대한 벽화를 연상시킨다. 그 『변경』이 세월의 먼지를 털어내고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전 12권으로 구성된 『변경』 개정판(민음사)이다. 2003년 절판된 지 11년 만이다.

 원작은 1986년 집필을 시작해 98년 완간됐다. 99년에만 50만 권 이상 팔리며 대중과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작가는 이 작품으로 99년 호암상(예술상)도 수상했다. 하지만 이씨에게 엄청난 ‘짐’이 되기도 했다. 2001년 진보 시민단체의 행동을 홍위병에 빗댔다가 ‘책 장례식’이란 사건을 겪었다.

 작가는 대단한 충격을 받았다. 2003년 책을 절판시킨 뒤 미국으로 훌쩍 떠났다. 이번 개정판은 12권 중 결말 부분 700매 가량을 포함해 총 1000매 분량을 고쳐 썼다. 그를 8일 경기도 이천 부악문원에서 만났다.

 “지난해 6월부터 시작한 수정 작업이 꼬박 1년 걸렸어요. 처음 쓸 때는 24권을 목표로 했던 터라 마지막을 다소 느슨하게 맺었습니다. 나중에 설명할 수 있다는 생각에 논리적으로 듬성듬성하게 썼던 부분도 이번에 채워넣었어요. 하자보수하려다 증·개축 혹은 리모델링한 격이 됐습니다.”

 『변경』은 1940~50년대를 배경으로 월북한 남한 지식인 이동영을 다룬 소설 『영웅시대』의 속편 격이다. 50년대 후반부터 72년 유신체제 수립까지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남한에 남은 이동영의 자식인 명훈·영희·인철 삼남매의 비극적인 삶을 그려낸다. 미국과 소련 두 거대 제국의 변경이라는 지정학적 요인에서 비롯된 한국의 운명을 형상화했다.

 그가 ‘리모델링’이란 고된 작업에 착수한 것은 80년대 이야기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변경』은 그가 새롭게 해석하려는 80년대의 이야기, 그가 끌어올리려는 시대의 마중물이다.

 “80년대를 다시 이야기하려고 보니 절판시킨 『변경』의 60년대를 다시 살려낼 수밖에 없더군요. 80년대 후일담이 공감을 얻지 못하는 건 그때의 이야기만 해섭니다. 뭔가 빠뜨리게 되고, 정확한 이야기를 할 수 없게 되는 거죠.”

 그는 2000년대 이후의 한국 사회는 80년대가 만들었고, 80년대를 여는 열쇠는 60년대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60년대라는 시간을 외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대선에서 50~60대가 분노를 드러냈죠. 그들은 격동의 시대를 겪어오면서 정신 없이 최선을 다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행동하지 않는 양심’이라는 비판을 받고, 유신시대를 만들었다는 오명을 썼어요. 『변경』을 되살려 그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씨는 60년대를 『변경』이라는 대규모 벽화로 그려냈다면, 80년대는 부분화의 연작으로 조망하겠다고 했다. 소설가가 된 인철을 중심으로 80년대를 살펴보는 ‘예술가 소설’이 첫 주자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민이 많아요. 당장 광주민주화운동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부터 걱정입니다. 자료 중심으로 접근하더라도 새로운 해석에 대한 반감이 클 테니까요. 이념이나 지역 감정의 검열에서 자유로울 만큼의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하지만, 같은 이야기라도 ‘이문열’이 쓰면 문제가 되니까. 일부 세력에 대해 눈치 없이 말했다가 15년 동안 호되게 (대가를) 물었지요.”

 그가 정치적인 발언을 삼가는 것도 그래서다.

 “쓸데없는 족쇄에서 자유롭고 싶었어요. 최근 10년간 적지 않은 책을 썼는데 사람들이 ‘정치 그만하고 책 쓰라’고 하더군요. 외면당한 거죠. 이제 일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아요. 써야 할 이야기의 우선 순위를 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회적 발언을 하는 데 조심스러웠지만 그가 바라보는 우리 사회는 여러 면에서 우려스럽다. 즉물적인 대답을 강요하는 온라인이나 소설네트워크서비스(SNS) 같은 ‘상시적인 광장’에서 정파 심리와 사회의 반목이 결합돼 갈등이 확대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우리 사회의 내부 분열이 극심합니다. 대의정치의 정쟁 수준을 넘어선 것 같아요. 정치적 견해차로 인한 대립이라기보다 제 것만 챙기려는 이익 다툼 같습니다. 반목과 이견을 아우를 수 있는 상위의 공통분모를 찾고 회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글=하현옥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이문열=1948년 서울 출생. 77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와 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소설 『사람의 아들』 『젊은 날의 초상』 『황제를 위하여』 『영웅시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불멸』 『리투아니아 여인』 등. 평역소설 『삼국지』 『수호지』 『초한지』 등. 동인문학상·이상문학상·동리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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