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인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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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 최영철 (1956~) '인연' 전문

오늘은 특별한 날이라고
자장면집 한 켠에서 짬뽕을 먹는 남녀
해물 건더기가 나오자 서로 건져주며
웃는다 옆에서 앵앵거리는 아이의 입에도
한 젓가락 넣어주었다
면을 훔쳐올리는 솜씨가 닮았다



밥상에서 서로의 젓가락이 엇갈리는 순간 가족은 서로의 살을 부비는 것이다. 힘들지 않느냐고, 조금 참다보면 좋은 날 있지 않겠느냐고. 그 상에 오른 음식이 무엇인가는 아무 문제도 아니다. 따뜻한 말과 눈짓을 나누며 서로에게 말없이 몸을 빌려주는 사랑, 그 사랑이라는 사글세방에 세들어 살며 한 세상 지내고 싶다. 가끔 귀도 후벼주고, 입다 팽개친 윗도리의 팔도 조심스레 펴 옷걸이에 걸어주며…. '낡아도 좋은' 오매, 징글징글한 사랑이여.

강형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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