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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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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낭비 속에 악덕의 벌레가 기어든다는 말을 한 고대 로마제국의 현인 「키케로」는 「로마」근교에 별장을 하나 두고 있었다.
「트스크름」언덕의 절경 속에 자리잡은 이 별장은 당시의 기준으론 소박하기만 했다.
가령 웅변가 「호르텐시우스」의 별장은 19만평짜리로 그 속엔 양어지며 사냥장까지 갖춰 있었다.
정치가이자 변호사이기도 했던「키케로」는 공무에 시달린 몸을 이 별장에서 풀었다.
뿐만 아니라 여기서 그는 그의 대표적인 저작들을 써냈다. 그것은 이웃에 있는 「르쿠르스」의 별장에 있는 귀중한 장서들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키케로」에게 있어 낭비와 사치는 달랐다. 그리고 그에게 있어 별장은 단순한 사치만도 아니었다.
그 후 「키케로」는 「나폴리」만·「폼페이」 등 각지에 별장을 8개나 갖게 되었다. 그것은 「로마」가 세계제국으로 발전되어 감에 따라 그의 활동범위도 커졌기 때문이었다.
별장은 로마제국이 커가고 부유층이 커감에 마라 더욱 유행을 보였다. 그것은 당시로는 다시없는 신분의 상징이기도 했다.
별장은을 「라틴」어로는 VILLA라고 했다. 로마초기에는 도시에 사는 귀족이 시골농장을 경영하기 위해 세운 시골집을 뜻했다.
그게 로마공화정 말기에 이르러는 주로 보양과 오약을 위해 경치 좋은 곳에 세운 부자의 별저의 뜻으로만 쓰이게 되었다.
요새 별장이라는 말도 여기서 유래한다. 그리고 그 뜻도 로마공화정 말기 때와 똑같다.
우리나라에서도 별장은 예부터 그리 낯선 것은 아니다.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지금의 성북동밖 숙정문 밖에 있던 안평대군의 별장이다.
이때부터 서울근교에는 권력이나 돈이 있는 풍류객들이 지은 별장들이 많았다.
대원군의 석파산장도 세검정 쪽에 있었다. 금가진의 별장은 인왕산기슭, 지금의 청운동 끝에 있었다.
갑오경장으로 유명한 홍영직은 지금 가회동 꼭대기에 별장을 두고 있었다.
별장의 매력은 언제나 대단했다. 신분의 상징으론 그만이기 때문이다. 공산권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흐루시초프」「브레즈네프」또는 김일성의 초호화별장들 얘기를 들어도 짐작할만하다.
그러니 그게 어느 나라 서민들에게나 꿈의 극치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키케로」에게 있어 별장은 호사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안평대군은 권력을 뽐내기 위해 별장을 세우지도 않았다.
요새는 그렇지가 않은 모양이다. 이게 사실은 탈이다. 별장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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