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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마리 말이 달린다, 소리 없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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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1만 마리 말이 달려 나오는 그림 ‘만마분등’ 앞에서 그가 가부좌를 틀자 주위가 일순 고요해졌다. 하루 일과를 참선으로 마친다는 화가 리징거(47)는 “그리는 것 또한 수련”이라며 “움직임과 고요함은 결국 같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말은 사람과 인연이 깊다. 인류의 조상으로 중국 신화에 나오는 복희씨(伏羲氏)는 황허(黃河)에 나타난 용마(龍馬)의 등에서 하도(河圖·주역의 원리가 담겼다는 그림)를 보고 천지의 이치를 깨우쳤다. 한(漢) 무제(武帝)는 한혈마(汗血馬)를 얻으려 서방 원정을 했다. 피처럼 붉은 땀을 흘리며, 하루에 1000리를 달린다는 말이다. 말 그림이 오늘날까지 널리 사랑받는 데는 이 같은 곡절이 있는지도 모른다.

 갑오년(甲午年), 말띠해다. 연초부터 달리는 말 그림이 도처에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7월, 달리기에 지칠 때쯤 서울 삼청동 이음아트한옥 갤러리(02-736-8118)에 설원을 달리는 1만 마리 말 그림이 걸렸다. 중국 화가 리징거(李景革·47)의 국내 첫 개인전이다. 언덕배기에 숨은 듯 자리잡은 한옥 갤러리에서 9∼31일 말 그림 및 산수화 20여 점으로 관객을 맞는다. 전시를 앞둔 리징거를 7일 만났다.

 1만 마리 말이 분진하는 모습을 담은 대표작 ‘만마분등(萬馬奔騰)’ 앞에 앉은 그는 “겨울이 되면 말이 달리는 모습이 한층 더 웅장하다”고 했다. “수풀이 없어 더 빨리 뛸 수 있고, 앞에 걷잡는 것이 없어 더 멀리 볼 수 있기 때문”이라며 “만마도는 민족의 응집력을 상징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말로써 인간 세상을 빗대고 싶은 건가.

 “말을 인간 세상에 비유하자면, 군자다. 사람들은 흔히 말이라 하면 전란 때 용맹하게 뛰던 모습을 떠올린다. 그보다 더 논해야 할 것이 말의 덕이다. 공자는 ‘천리마는 그 힘이 아니라 덕을 칭찬하는 것이다(驥不稱其力, 稱其德也·『논어』 헌문편)’라고 했다.”

 -말은 동양화의 오랜 주제다. 당신의 말 그림엔 어떤 특별한 점이 있나.

 “오늘날 화가들은 서양화 기법을 많이 도입한다. 쉬베이훙(徐悲鴻·1894~1953)이 그랬다. 그는 밑그림을 그렸고, 그림 속에 빛을 살렸다. 전란이 많던 시대, 이 또한 하나의 돌파라 할 수 있다. 내 경우는 보다 더 전통에 근접한다. 말의 근골(筋骨)을 살리려 농담을 많이 활용한다.”

 아버지는 화가였다. 부친 리원밍(李文明)은 다섯 살 난 아들에게 붓 잡는 법을 가르쳤다. 산수화를 그리던 아버지는 아들을 이끌고 산으로 다녔다. 고향인 헤이룽장(黑龍江)성부터 네이멍구(內蒙古)까지, 말은 늘 가까이에 있었다. 문화혁명과 개혁개방, 천안문 사태로 이어지는 격동의 세월을 보낸 아버지는 아들에게 ‘정치를 멀리 하라’ 당부했다. 리징거가 화가협회에도 가입하지 않고 지내는 이유다. 리징거는 선양(瀋陽)의 루쉰미술학원에 입학했지만 중도에 그만뒀다. 스승은 그저 부친이었다.

 “중국 문화는 5·4 운동을 거치면서 전통으로부터 많이 이탈했다. 나는 아버지로부터 직접 전수받은 덕분에 전통 서화예술의 맥을 이을 수 있었다. 홍콩에서 1년간 제자들을 가르친 적이 있다. 그림뿐 아니라 불법(佛法) 수련도 가르쳤다. 전통적 그림 수업이란 그런 것이다.”

 리징거의 ‘팔준도(八駿圖)’는 2005년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됐다. 이에 대해 그는 “그들에게 동양 문화의 가치관을 정확히 전달했다는 게 중요하다”고 말을 아꼈다.

 -한국 관객에게 당신 그림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내적 수양의 결과물을 예술로 남겨 바른 에너지를 전파하는 것, 그게 내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다.”

글=권근영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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