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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북한산 둘레길 근처에 집 짓고 살까…”

조인스랜드

입력

[안장원기자] 주말마다 산행을 즐기는 50대 초반의 대기업 임원 김모씨. 3년전 무릎을 다진 이후로 험한 코스는 피하고 경사가 심하지 않는 서울 북한산 주변 둘레기를 걷고 있다. 사계절 자연의 변화를 몸으로 느끼는 산행은 언제나 새록새록 삶의 활력을 준다. 일주일간의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해주는 셈이다.

그런 그가 근래 눈 여겨 보는 게 있다. 둘레길 주변 땅이다. 퇴직 뒤 날로 늘고 있는 둘레길 등산객들을 대상으로 자그마한 가게를 운영하면 어떨까. 자그마한 2층짜리 주택을 지어 부부가 2층에 살면서 1층을 가게로 쓰면 답답한 도시를 벗어난 쾌적한 생활과 짭짤한 수입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서울 인근이어서 나이 들어 아플 경우 병원 이용도 어렵지 않다.

그만의 생각은 아닌 것 같다. 하루는 부동산중개업소에 들어 둘레길 주변 땅값을 물어보니 2년새 3.3㎡당 100만원 가량 올랐단다. 그러고 보니 둘레길 주변에 새 집이 부쩍 늘었다.

부동산 개발재료라고 보기에 부족한 둘레길이 주변 땅값을 자극한 셈이다. 생각해보면 “그럴 수 있겠다” 싶은 현상이 눈으로 확인됐다. 제주 올레길이 주변 땅값에 미친 영향을 다룬 연구논문이 나왔다.

대한지적공사 이동원 정보콘텐츠실장과 제주대 정수연 교수(경제학과)가 쓴 ‘제주 올레길이 인근 토지가격 상승률에 미친 영향에 관한 연구’다. 고속도로·지하철·쓰레기소각장 등의 개발이 땅값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경우는 많았지만 트레킹코스를 다루기는 처음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2007년 개장된 제주 올레길은 현재 20개 구간으로 크게 늘었다. 개장 당시 3000면에 불과하던 관광객이 2010년 60만명으로 급증했다. 지난해 제주도 관광객이 1000만명을 둘파하게 한 1등 공신이 올레길이기도 하다.

이 논문은 사람이 가장 많이 찾는 7코스를 다뤘다. 이 구간은 외돌래 제주올레 안내소~월평 송이슈퍼의 13.8km다. 트레킨 소요시간은 4~5시간이다.

둘레길은 특정 지점이 아닌 연결된 도로여서 분석이 쉽지 않다. 연구자들은 하나의 좌표를 기준으로 할 수 없어서 둘레길을 중심으로 1km 이내 각 필지별 거리를 계산했다. 땅값은 2002~2010년 개별공시지가를 기준으로 했다.

“올레길에서 멀어질수록 땅값 상승률 떨어져”

결론은 올레길이 주변 땅값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올레길에서 1m 멀어질수록 땅값 상승률이 연간 0.03%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 시장에 새로운 투자처가 나타난 셈이다. 2008년 금융위기 개발호재가 뜸해졌는데 그 동안 제대로 관심을 끌지 못했던 ‘블루오션’이 등장했다. 무심코 걷던 길이 돈이 된다. 둘레길·올레길 투자가 새로운 전원투자로 떠오르는 걸까.

하지만 이 논문은 주의사항을 덧붙였다. 주변 땅값에 영향을 미치기는 하지만 다른 재료에 비해서는 미미한 수준이다. 다른 논문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 개통에 따른 땅값 상승률은 연간 5.3%, 서울 왕십리지역의 용도지역 변경은 7.52~21.49%다.

올레길이 전국적인 유명세를 탄 2010년 이후에 대한 분석이 빠져 올레길 영향 전망에 한계가 있기도 하다.

둘레길·올레길 주변 땅에 꽂혔다면 돈 욕심보다 안락한 주거에 초점을 맞추는 게 어떨까. 이마저도 어려울 수 있다. 이미 둘레길이나 올레길 주변에 소규모 개발이 잇따르면서 난개발 우려를 떨치기 어렵다. 전원의 주거 쾌적성은 떨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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