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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이철호의 시시각각

싸이에게 태극무공훈장을 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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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철호
수석논설위원

얼마전 미국 하와이 태평양사령부를 다녀왔다. 하와이는 관광산업이 절반이고, 나머지 절반은 정부 투자(군비 지출)로 굴러가는 핵심 군사 지역이다. 태평양사령부에만 사령관을 포함해 예하 육·해·공군 사령관이 모두 대장이다. 태평양 연안은 물론이고 멀리 인도양까지 전 세계 면적의 52%를 관할한다.

 태평양사령부의 부사령관(중장 진급 예정)과 히컴 공군기지의 공군 소장은 입을 모아 세 가지를 강조했다. “①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철군으로 미 전력의 재균형(Rebalancing)이 진행 중이다 ② 재정난과 시퀘스터(예산 자동 삭감 조치)로 미 국방 예산이 감축된 만큼 아시아 방어를 위해 한국과 일본이 잘 지냈으면 좋겠다 ③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 동맹은 역대 최고 수준”이란 것이다.

 왜 한·미 동맹이 역대 최강이라고 할까. 거듭된 질문에도 미 장성들은 말을 아꼈다.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최고급 군사비밀이 숨어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궁금증은 전혀 엉뚱한 데서 풀렸다. 하와이대학 동서문화센터의 데니 로이 수석연구원이 해답의 실마리를 내놓았다. “갤럽 여론조사에서 미 국민의 한·미 동맹에 대한 지지도가 64%까지 올라왔다. 또 55%가 북한 침공 시 미군이 즉각 개입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한마디로 미 국민의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치솟았다는 뜻이다.

 로이 수석연구원은 그 비밀을 이렇게 찾았다. “우선 미국 소비자들이 삼성의 갤럭시와 현대차 등에 친숙해졌다. 또 한국 TV 드라마 팬들이 생겨났고, 한국의 음식과 문화를 직접 체험하는 미국인도 늘어났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싸이의 강남스타일이다.” 강남스타일의 유튜브 클릭 수는 20억 건을 돌파했다. 뮤직비디오엔 한국을 배경으로 신나는 말춤이 등장한다. 한국은 유쾌하고, 가까이 하고 싶은 좋은 나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소프트 파워의 힘이다.

 눈치 빠른 미 기업들이 이런 순풍을 놓칠 리 없다. 지난달 게임업체 트레이아크는 ‘2054년 서울 강남’을 배경으로 ‘콜오브듀티’ 신작을 선보였다. 게임 영상에는 한글 간판이 즐비한 강남대로, 가로등에 걸린 태극기, 인천공항행 광역버스까지 생생한 디테일이 눈길을 끈다. 콜오브듀티는 신작마다 수천만 장씩 팔리고, 지난해 패키지 판매 첫날에만 10억 달러(약 1조원)를 넘긴 세계 최고의 일인칭 슈팅 게임이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한·미 동맹이 굳건해진 배경에는 북한 김정은도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핵무기와 탄도 미사일 개발만으로 미운 털이 박힌 게 아니다. 로이 수석연구원은 북한을 4번 방문한 김정은의 친구, 전 농구선수 데니스 로드먼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온갖 기행과 알코올 중독·파산으로 로드먼을 고약하게 바라보는 게 미 사회의 지배적 시각이다. 미 공화당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그는 멍청이(idiot)이며 야만적 독재자의 선전도구”라 했고, 하원 외교위 민주당 간사도 “김정은을 찬양하는 어리석은 로드먼”이라고 비난했다. 덩달아 북한 이미지도 최악이다. 이미 할리우드 영화엔 북한이 악당으로 자주 묘사되고, 최근 ‘더 인터뷰’는 김정은의 암살까지 소재로 삼았다. 오죽하면 미국인들이 올 초 갤럽 여론조사에서 사상 처음 이란을 제치고 북한을 가장 싫어하는 나라로 꼽았을까.

 싸이는 이태 전 강남스타일로 4등급 옥관문화훈장을 받았다. 그는 “나에게 과분하며,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며 감격했다. 하지만 싸이가 진짜 받아야 할 것은 최고 등급의 태극무공훈장이 아닐까 싶다. 손자병법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진짜 승리’라 가르친다. 싸이는 군대를 두 번 갔다 온 불행한 예비역 병장이다. 그럼에도 역대 그 어느 국방장관이나 참모총장조차 엄두를 못 낸 대단한 일을 해냈다. 지금 대한민국 철벽 방어의 진정한 일등공신은 싸이다. 태극무공훈장을 꼭 전쟁터에서 뚜렷한 무공을 세운 사람에게만 줘야 할까. 이미 세상이 바뀌었다. 소프트 파워 덕분에 싸우지 않고 이기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철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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