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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토지 용도변경 청탁 비리의 싹을 잘라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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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재력가를 청부살인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김형식 서울시의원이 숨진 재력가로부터 빌렸다는 5억여원이 토지 용도변경을 위한 청탁의 대가였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숨진 재력가 송모씨가 수년 전 자신이 소유한 일반주거지역 토지를 상업지구로 변경해 달라고 요청하고 그 대가로 거액을 건넸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당시 김 의원은 서울시의회 상임위인 도시계획관리위원회 소속이자 서울시의 토지 용도변경을 결정하는 도시계획위원회 위원이기도 했다. 김 의원이 용도변경 청탁을 받았을 개연성이 매우 큰 대목이다.

 당시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는 해당 토지의 용도변경 신청을 기각했다고 한다. 따라서 청탁 실패에 따른 청탁 대가의 반환 요구가 청부살인의 원인이 됐는지는 검찰의 수사를 통해 밝혀질 수밖에 없다. 다만 여기서 우리는 각종 지역 민원과 청탁 요청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시의원이 지목변경과 건축허가 등을 최종 결정하는 도시계획위원회의 정위원으로 활동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토지 용도변경은 그 자체만으로 땅값을 몇 배나 올릴 수 있는 엄청난 이권이 걸린 사안이다. 실제로 숨진 송씨가 소유한 토지의 용도가 일반주거지역에서 상업지역으로 바뀌었을 경우 200억원 이상의 차익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김 의원은 바로 그런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청탁의 동기와 수뢰의 조건이 딱 맞아떨어진다. 송씨가 그동안 경매로 나온 건물을 싸게 낙찰받은 뒤 형질변경과 증축을 통해 재산을 늘려 왔다는 사실은 그 개연성을 뒷받침한다.

 이번 용도변경은 무산됐다지만 그동안 이런 식으로 청탁과 수뢰의 검은 거래를 통해 얼마나 많은 토지의 용도변경이 이뤄졌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청탁과 검은돈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시의원이 각종 이권이 걸린 결정을 내리는 도시계획위원을 겸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비리의 가능성을 키운다. 차제에 전국 지방의회 의원은 해당 지역 도시계획위원회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법규를 뜯어고칠 필요가 있다. 비리의 싹을 잘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