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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이 나온다" "안 나온다" 엇갈린 주장 속에|『초남 금광』이 다시 개발된다|광양군 광양읍 초남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1930년대의 국내 최대 금광으로 알려진 광양군 광양읍 초남리 34l의 1 「초남 금광」이 26일 폐광 37년만에 재개발 공사가 착공되면서 『승산이 있다』 『없다』는 엇갈린 주장 속에 광양군 전체가 노다지의 꿈에 술렁이고 있다.
초남 금광은 1937년 일본 광업 주식회사에 의해 첫 개발, 그 뒤 42년 일제의 산금정비령에 의해 폐쇄되기까지 광양군 6개 금광 중 제일 양질의 금을 연간 5백kg씩 캐냈었다.
그뒤 58년 광양 광업소 (대표 하태호·60)가 인수했으나 막대한 복구 예산 때문에 재개발 하지 못하고 방치했다가 지난 7월l일 광순 광업소가 14광구 7백여만평에 대해 15년간의 조차 계약을 맺고 복구 작업에 나선 것.
순천 광업소는 10억원 예산으로 구갱도 (7개항·l천3백m)에 가득 찬 물을 퍼내는 작업부터 시작, 내년 10월쯤이면 본격 채금에 들어갈 예정이다. 『개까지 금덩이를 물고 다닐 정도였다는 한때의 금주 산지 광양은 금광 재개발과 함께 노다지 화제가 연발하고 있다. 특히 옛날 금광에서 일했다는 사람들은 초남 금광의 재개발에 대해 희망적이라느니 회의적이라느니 자기 일처럼 열을 올리기도 한다.
승산이 있다는 측은 현 갱도의 물을 퍼낼 경우 바닥에 있을 폐석만 가지고도 본전을 건질 수 있다며, 폐광 이유가 금맥이 떨어졌기 때문이 아니고 전쟁 물자인 철이 필요했던 사제가 산금정비령을 내린 때문이었다면서 아직도 많은 영의 매장 원금이 남아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일체에 반발심을 갖고 있던 한국 광부들이 채금 도중 발견한 노다지 부분을 그냥 덮어놓고 지나치기도 했다는 것.
그러나 회의론을 펴는 사람들은 초남광은 l2개항까지 파 내려간 노광으로 폐광 당시 이미 모래가 나왔다고 주장하면서 바닥 폐석만 가지고는 막대한 복구 자재대 및 인건비를 건지기엔 힘들지 않겠느냐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한편 당사자인 광순 광업소 측은 최신 장비를 동원, 정밀 조사 결과 매장량이 50만t (원광)으로 추정되며 품위도 t당 20∼309 정도 (품위 10g이면 개발 가능)로 연간 l천kg 생산은 무난할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광산측은 금질도 7색 (기준 1∼10색) 정도의 양질로 판명됐다고 밝히고 예상대로만 된다면 1년에 66억원 어치의 금이 쏟아지는 국내 최대의 금광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총 생산량은 2백43kg) .
해방 후 광양에서 노다지를 캐내 온 부자가 봤다는 하봉호씨의 일화는 유명하다.
50년대 말 하씨도 역시 일인이 버리고 간 본정 금광 (광양면 사곡리 본정 마을)에 손을 댔다.
그러나 3갱째가 물을 퍼내도록 있어야 할 금맥이 보이지 않았다. 발굴을 시작한지 2년이 넘어 가산은 거의 탕진 상태. 산더미 같은 빚까지 짊어진 하씨는 어느날 갱 입구에서 신세타령을 하며 곡괭이를 갱밖에 내던졌다는 것. 그런데 곡괭이 부딪치는 소리가 이상해 자세히 보니 끈적끈적 했다.
깜짝 놀란 하씨가 그 부분을 파본 즉 엄청난 양의 노다지였다는 것.
당시 싯가로 2천만원이 넘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일확천금의 예다.
광양군 한 관계자는 아직도 백운산 줄기를 비롯, 많은 금이 매장돼 있으리라 추정된다면서 『문제는 채굴 시설 현대화로 현재의 지표 부분에서 심부 채굴 개발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어쨌든 『와서 해답을 가져가라』며 입을 굳게 다물고 있던 초남 금광은 이제 광순 광업소에 의해 그 입을 열게 될 것 같다. 【순천=허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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