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view &] 내수 살리기, 고급화에 답 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0면

박병원
전국은행연합회장

우리 경제는 공급 과잉, 수요 부족의 늪에 빠져 있다. 사실은 대부분의 업종이 전 세계적으로 공급 과잉 상태라고 생각된다. 제조업은 수출로 이 난국을 타개하면서 전체 경제성장률을 그나마 지탱해 주고 있지만, 해외로부터 수요를 보충하기는커녕 알량한 수요를 해외에 빼앗기고 있는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어려움은 날로 심화되고 있다.

 그러지 않아도 가장 심각한 공급과잉 상태에 빠져 있는 음식업, 운수업(택시, 용달), 소매업은 세월호 참사의 직격탄을 맞았다. 소위 고급 지식서비스업이라고 할 수 있는 변호사, 의사, 회계사 등도 일감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고 날로 봉급 수준이 떨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가들을 모아 놓고 투자를 종용한다거나 취직을 하지 못한 젊은이들에게 창업을 권장하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투자나 창업은 거시분석에서 ‘수요’로 분류되지만, 완료되는 동시에 공급능력이 확대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수요 증가가 전제되지 않은 공급 확대는 모두를 더 어렵게 만든다.

 오직 내수진작만이 ‘체감경기’를 좋게 할 수 있는 상황인데, 문제는 이 내수라는 것이 양적으로는 거의 포화상태에 있다는 점이다. 우리보다 소득 수준이 두 배나 높은 나라를 가 보아도 하루에 세 끼밖에 먹지 않고, 초등학교를 두 번 다니지도 않고, 맹장 수술을 두 번 하지도 않더라는 것이다.

 양적으로 한계에 부딪히면 질과 값을 높여서 더 많은 수요를 창출할 수밖에 없다. 고급화를 통한 수요 확대는 한계가 거의 없다는 장점도 있다. 대부분은 질이 10% 높아지면 값은 10%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몇 배가 되는 것이 상례이다. 1000달러짜리 와인이 10달러짜리 와인보다 질이 100배 높은 것은 아니다. 이것이 명품의 이치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고급화를 통한 수요창출’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요인이 몇 가지 있다.

 그 첫째가 지표 물가에 대한 집착이다. 물가지표에서는 품질을 높인 만큼 값이 올라가는 것도 물가상승으로 잡힐 수 있다. 제조업의 경우 물가조사 대상 품목의 가격은 유지하고 신제품을 만드는 식으로 피해 나갈 수 있지만 서비스업의 경우에는 이런 방법마저 쓰기 쉽지 않다. 안전이라고 하는 굉장히 고급서비스를 강화하면서 그 비용만큼 뱃삯을 올리면 물가에는 어떻게 반영이 될까 궁금하다.

 두 번째 벽은 소위 ‘사회적 위화감’을 내세워 고급화를 막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국내에서는 누구도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교육, 더 나은 치료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고집은 구매력 있는 국민이 더 나은 서비스를 원할 경우 외국으로 나가는 수밖에 없게 만들고 있다. 실제로 더 나은 서비스를 받지 못하게 하지는 못하면서 말이다. 이는 국내에서 다른 일부 국민이 더 고급서비스를 제공해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만 없애는 결과를 낳는다. 이들이 더 많이 벌어 더 많은 세금을 내고 더 많은 소비를 할 수 있는 가능성도 동시에 봉쇄되는 것이다.

 우리는 원화가 강세이던 2007년에 50억 달러, 지금도 해마다 40억 달러 정도를 외국에서 공부를 하기 위해서 쓰고 있다. 만성적자인 이전수지의 상당부분도 해외에 있는 자녀에게 송금하는 것이라고 볼 때 우리는 교육에서만 해마다 5조원 이상의 내수를 해외로 유출하고 있는 것이다. 연봉 5000만원의 교원 10만 명을 고용할 수 있는 큰 돈이다.

 의료, 골프, 관광 등으로도 많은 수요가 유출되고 있다. 여행수지에서 지난해 74억 달러의 적자가 났으니, 8조1000억원에 달하는 내수가 될 수도 있었던 소비 수요를 우리는 해외로 내쫓은 것이다. 2007년에는 그 적자가 158억 달러였으나 당시 환율로도 14조7000억원의 수요를 해외에 갖다 바쳤던 셈이다. 이런 해외로 유출되는 수요를 최소화하는 동시에, 제조업을 본받아 서비스업의 경쟁력을 강화해서 해외 수요도 잡아 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제조업이 할 수 있었던 일을 서비스업이 못할 리가 없다.

 경제부총리로 지명된 최경환 의원이 지표에 연연하지 않고 체감경기를 중시하겠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 체감경기란 별것 아니다. 취직이 잘되고 장사가 잘되게 해 주면 되는 것인데 서비스업의 내수진작이 그 요체다.

박병원 전국은행연합회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