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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호·인 3국시인의 대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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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다음 글은 폐막직전 대회장에서 만난 한·호·인 3국 시인들의 시에 관한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성빈지(시인·성대교수·영문학) ▲「존·블라이트」(호주) ▲「서디어·베라」(인)
서울에서 개최됐던 제4차 세계시인대회가 6일 하오 8시 5일간 계속된 회의의 막을 내렸다. 사정에 의해 폐막장소를 수원「컨트리·클럽」으로 옮긴 가운데 열린 폐회식에는 그 동안 얼굴을 익혔던 국내의 시인들이 작별의 아쉬움을 나누었다. 조병화대회장의 폐회사와참가비증정, 그리고 81년 미국서 열리는 제5차 세계시인대회의대회장 「로즈매리·C·월킨슨」의 초청인사가 있었다. 2일 개막됐던 이번 대회는 『현대시에 있어서의 동과 서』를 주제로 7차례의 주제발표와 공동토의, 그리고 두 차례의 시 낭송회가 있었다.
대회장에서 우연히 어울리게 된 외국의 두 시인은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호주의 노 시인「존·블라이트」씨는 학주영어의 특징있는 발음 때문에, 인도 「캘커타」 출신의 「서디어·베라」씨는 그 특유의 딱딱한 발음 때문에 대화에 장애를 주었지만 같은 시인들이므로 되묻고 되묻고 하는 사이에 이야기는 부드럽게 이어져 갔다.
차차 이 시인들의 시인으로서의 위치같은 것이 드러났다. 우선「블라이트」씨는 호주 굴지의 저명한 시인이고 「베라」씨 역시「캘커타」의 다재다능한 시인이었다.「블라이트」씨는 작은 키에 마치 차돌과도 같이 정기에 넘쳐 보이는 체격을 하고 있었다. 친절과 호의에 넘쳐흐르는 호호야면서도 그 눈매에는 예리한 빛이 빛나고 있으며, 이제 쌓이고 고인 예지 같은 것을 풍김으로써 시인다운 위엄을 느끼게 했다. 더러 필자가 단기해 줄 것을 요구하자 떨리는 손으로 열심히 쓰는 모습에는 성실성이 배어 있었다.
그의 시의 주제에 대해서 묻자 서슴없이 『인간과 환경과의 관계』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환경」이란 그에게는 바다를 의미한다고 했다. 특히 공해로 해서 생기는 환경의 변화가 시의 주제라고 덧붙였다. 바다에 사는 묻 동물. 고래·게·갈매기 따위가 시에 곧 잘 등장한다고. 인간은 인간에게 내재하는 얘깃거리를 찾아야지 신화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고 했는데 이런 점으로 그는 주관적인 시인이라 할 수 있겠다.
필자가 시를 청하자 두툼한 시선집에 다정한 말을 곁들여 서명해서 준다. 그런데 보니 그책엔 또 「보관해 두기 위한 책」이라고 쓰여 있으며, 손때가 묻어 있었다.
초기엔 「소네트」시형을 주로 사용했으나, 요새 와선 자유시도 많이 쓰고 있다. 17개국의 신문에 소개된바 있는 국제적인 시인인데 64년에는 「최우수시집상」을 탔다고 한다. 다음은 노어를 비롯해서 여러 나라말로 번역된 바 있는 그의 『고래의 죽음』이란 「소네트」 (14행시)다.
생쥐가 죽었을 때 딱한 생각이 들었다.
그 작고 섬세한 짐승이 슬픔을 자아내였다.
어저께 모래톱 위에 죽였을 때 방파제에는 흥분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고래가 죽었을 때 눈물을 짜낼 수는 없다.
구슬픈 고래의 죽음.
갈매기와 상어에게는 큰 잔치.
조류에 끌려서 아직도 살아있는 듯.
그러자 마침내 마치 도살장에서처럼 썩은 바람이 이 쪽으로 밀려온다.
코를 찌른다. 우리를 살려다오.
차라리 작은 구멍에서의 쥐의 죽음을.
이 아름다운 땅에서의 고래의 죽음은 안될 말이다.
어린이가 죽으면 마음이 아프지만
겨레가 제물이 될 마당에 누가 울겠는가?
「서디어·베라」는 깡마르고, 키가 작은 체격인데 그의 얼굴에는 빨리 회비하는 슬기가 역력했다. 시에 대해서 묻자 거침없는 말이 속사포처럼 이어진다.
『시란 영감입니다.』 필자가 그럼 당신은 낭만주의자인가, 하고 묻자 『아닙니다. 영감이란 낭만이 아닙니다. 영감이란 곧 사물의 본질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사물은 그 본질을 깊이 꿰뚫고 봐야합니다.
한국사람들은 참 슬픔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매우 감정이 풍부합니다.
이 두 점은 인도사람들과 아주 흡사합니다. 그래서 한국사람과 얘기하면 아주 친근감을 느낍니다.
인도사람은 시로 태어나서 시로 죽습니다.
「타고르」는 인도가 낳은 위대한 시인입니다. 인도 사람은 어떠한 경우에도 결코 시를 포기 하는 법이 없읍니다…』라는 대답이었다.
낭만시인인 영국의 「셀리」와「키츠」를 좋아한다는 그는 현대시인 중에선 필자에겐 생소한 「루비번」(Rubbieburn)이란 이름을 댄다. 공무원·국회의원을 거쳐 현재 대법원의 변호사로 있다니 세사에도 능한 모양이다. 그는 자기의 시집 『하나의 세계를 위한 꿈』을필자에게 주었는데 읽어 보니 우선 쉽고 산문적인「스타일」이 눈에 띈다. 몇 귀절 인용해 본다.
나는 빛의 부름을 들었다.
세계는 광막하고 하늘은 가엾다.
우리의 삶에는 빛깔과 빛이 가득 차있다.
좁은 것에 갇혀 있어 무삼하리.

<약력>
◇「존· 블라이트」 ▲1913년 「브리스베인」 출생 ▲「브리스베인」고 졸업 ▲회계사자격 획득 ▲15년간 공무원생활 후 정부 각 연구단체 연구위원역임 ▲현재 호주문학국 원로회원 ▲시집 =『시선』『바다 「소니타」』등 다수, ◇「서디어·베라」▲1933년 「웨스트뱅골」출생 ▲「캘커타」대학졸업 ▲국회의원역임▲현재「캘커타」대법원 소속변호사 ▲시집 『하나의 세계를 위한 꿈』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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