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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서 만든 세계 유일 '기업 고용 성적표' 공개 … 재계 "반강제 여론 재판" 노동계 "고용 개선 효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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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고용형태공시제 시행을 둘러싸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경영계를 중심으로 “여론재판”이라는 불만이 나오는가 하면, 노동계에선 “고용구조 개선을 위한 첫걸음”이라는 긍정적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이 제도는 탄생 당시부터 적잖은 잡음을 일으켰다. 기업의 인력 운용을 반강제로 제어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의구심 때문이었다. 정부도 국회가 주도한 이 제도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기업의 인력 운용을 대외에 공표하는 곳이 없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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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가 2012년 6월 ‘고용정책기본법’을 개정하면서 고용형태공시제를 포함시킨 이유를 제안서에서 엿볼 수 있다. 새누리당 이한구 의원을 비롯한 28명의 발의자는 개정안 제안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비정규직 근로자가 사회 양극화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차별 개선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비정규직 보호와 관련된 사항을 보완·강화한 바 있으나 비정규직 수를 줄이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에 매년 근로자의 고용형태를 공시토록 해 비정규직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사업주에 대해 자율적으로 개선토록 한다.”

 이에 고용노동부 고위 관계자는 “제안 이유에서 보듯 정치권이 법을 개정한 배경에 비정규직이나 사내하도급 인력을 직접 고용토록 기업을 압박하기 위한 여론재판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일단 법이 제정된 상태에서 고용부는 집행을 해야 했다. 고용부는 두 차례에 걸쳐 각 기업에 공시에 참여할 것을 독려하는 한편 인력 운용 현황을 대충 올린 기업을 대상으로 보완을 요구했다. “사실상 반강제였다”는 기업의 불만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 고용부 관계자는 “업종의 특성과 글로벌 경영 트렌드 등이 무시되고, 기업을 부도덕한 집단인 것처럼 감정적으로 매도하는 기류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직접 고용한 근로자의 비율이 낮은 업체는 특정 업종에 집중돼 있다. 조선업은 글로벌 시장에서는 하청업체다. 선박을 수주받아 납품하기 때문이다. 수주량에 따라 인력 운용의 탄력성을 유지하는 이유다. 패스트푸드점이나 인력파견업은 업종의 특성상 아르바이트나 기간제 근로자가 많다. 포스코(철강업)는 설립 당시부터 쇠를 생산하는 직접 공정은 원청이 수행하고 원료 준비나 운송, 고로공장 건설과 같은 것은 도급이나 파견근로자를 활용해 프로젝트형으로 운영해 왔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이형준 노동정책본부장은 “정부가 기업에 고용을 확대하라고 주문하면서도 기간제나 파견과 같은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는 기업에 낙인을 찍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찮다. 고려대 김동원(경영학) 교수는 “사내하도급 근로자 문제는 최근 들어 사회적으로 큰 갈등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등장했다. 대기업이 그 중심에 있다. (공시제가) 이미지를 중시하는 대기업에 창피를 준다는 부작용도 있지만 사회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바닥 다지기란 측면에서 순기능이 상당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노동계도 같은 생각이다. 한국노총은 “비정규직 활용률을 높임으로써 산재 사망 사고의 책임을 회피하고 인건비를 절약하고 있음이 증명됐다”고 주장했다. 노동계는 LG유플러스·SK브로드밴드와 같은 기업을 대상으로 도급회사에 근무하는 노동자를 원청회사가 직접 고용토록 투쟁을 강화할 방침이다. 또 그동안 기업별 사내하청 근로자나 비정규직 근로자의 규모와 관련된 정확한 통계가 없었다는 점에서 관련 정책을 수립할 때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 고용부는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제를 강구할 방침이다. 고용부 정형우 노동시장정책관은 “공시의무 위반에 대한 제재규정은 없다. 하지만 공시율이 99.8%에 이른 것을 보면 기업들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매년 공시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고용형태 개선 실적이 우수한 기업의 명단을 추가로 발표하는 등 기업이 자율적으로 고용의 질을 높이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김기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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