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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 家電 고래싸움에 소비자 福 터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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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지난 9일 오후 서울 강변역 테크노마트 1층. 혼수가전과 홈시어터를 판매하는 삼성전자 매장에선 날씬하고 예쁜 도우미들이 고객을 맞이했다.

"보상판매를 이용하시면 최고 40만원까지 돌려받을 수 있어요. 이번 기회에 좋은 물건을 싸게 구입하세요."

같은 건물 지하 1층 LG전자 매장에서도 경쟁적으로 미니스커트를 입은 도우미들이 반갑게 인사했다.

"우리 제품을 사시면 고급 프라이팬과 명품 도자기 세트를 드려요. 이왕 바꾸시는 김에 프로젝션 TV로 바꾸시죠. DVD 콤비나 TV 장식장도 덤으로 가져가세요."

같은 날 서울 용산 전자상가의 전자랜드 매장. 결혼을 앞둔 김수진(27.서울 성북구 돈암동)씨는 혼수품을 사기 위해 어머니와 이곳을 찾았다.

김씨는 각종 전단지와 인터넷 검색으로 뽑은 제품 목록을 들고 매장 직원과 한시간 넘게 상담했으나 삼성.LG 중 어느 회사 제품을 사야 할지 고민해야 했다.

그는 "꼭 필요한 것만 사고 나머지는 천천히 장만하기로 했는데 에어컨을 사면 김치냉장고를 덤으로 준다는 말에 갈등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전업계의 양대 산맥격인 LG와 삼성의 시장 판촉경쟁이 다시 불붙었다.

올해를 기점으로 가전업계의 확고한 1위를 차지하겠다는 LG 측의 행보가 공격적이다. 이에 삼성도 자존심을 건 맞대응에 나섰다. 양사는 경기 위축에 따라 얼어붙은 소비심리를 경품 공세 등으로 녹여 보겠다는 뜻도 담겨 있다.

◇쌍둥이 판촉전=LG는 지난 1월 1백30만원 상당의 스탠드형 에어컨을 사면 40만원 상당의 액자형 에어컨을 주는 '투 인 원' 행사를 펼쳤다.

LG가 이 행사를 시작한 지 5일 뒤 삼성은 이와 비슷한 '홈 멀티'행사를 시작했다. 3월 들어서는 양사가 대대적인 혼수 판촉 행사를 벌였다.

삼성은 혼수 3백만원 이상 구입시 코렐세트(8P)를 증정하는 행사를 펼쳤다. 뒤이어 LG는 혼수 3백만원 이상 구입시 테팔매직핸즈세트(7P).코렐블루세트(16P).명품도자기세트(40P) 중 하나를 택할 수 있는 판촉행사를 열었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우리가 8개들이 그릇세트를 사은품으로 내놓자 LG는 16개들이 그릇세트를 들고 나왔다. 우리가 세탁기 40만원 보상판매를 시작하면 LG는 45만원 보상판매를 시작하는 식으로 물타기를 한다"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LG전자 관계자는 이에 대해 "마찬가지 입장이다. 우리가 먼저 시작했던 '고객평가단' 제도를 삼성이 따라했고 혼수 판촉 행사도 우리가 먼저 개발했다"고 말했다.

◇좋은 자리 잡기 경쟁=용산 전자랜드 매장에는 LG와 삼성의 직원들이 매주 세번 이상 들른다. 자사 제품이 어떤 위치에 놓여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전시용 상품에 한해서는 매장 직원에게 뇌물용(?)으로 대폭 할인된 가격에 제공한다. 때로는 공짜로 주기도 한다. 일년에 한번 정도는 임원급 인사가 매장을 직접 방문해 자사 제품의 배치와 매출 상황 등을 체크한다.

전자랜드 최진영씨는 "때로는 상품 재배치를 구실로 매장 측에서 양사에 연락해 경쟁을 부추기기도 한다"고 말했다.

하이마트는 지난해까지 매장에 있던 제품 광고 문안을 올해부터 없애버렸다.

매장 분위기가 어수선해질 뿐 아니라 영업사원들이 몰래 경쟁사의 광고 문안을 치워버리는 등 부작용이 많았기 때문이다. 대신 매장에는 비슷한 기종의 LG와 삼성의 제품을 나란히 진열한다.

냉장고나 세탁기도 마찬가지다. 이 매장의 조재희 영업부장은 "LG와 삼성의 경쟁이 심하기 때문에 진열 형태도 어느 쪽이 더 유리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11년 동안 가전매장에서 근무해 왔다는 그는 "LG와 삼성의 경쟁은 지금까지 변함없이 지속돼 왔으며 삼성과 LG가 존재하는 한 경쟁은 계속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장점유율=삼성의 냉장고 '지펠'과 LG의 '디오스'는 양문형 냉장고 부문에서 각축을 벌이고 있다. 드럼형 세탁기도 마찬가지다. LG의 '트롬'과 삼성의 '하우젠'은 시장점유율 3~5% 차이만 보이며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PDP TV와 프로젝션 TV분야에선 삼성의 '파브'와 LG의 '엑스캔버스'가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다. 김치냉장고 분야에서는 삼성의 '다맛'과 만도의 '딤채'가 가장 앞서고 있지만 후발주자 LG의 '1124'도 적극적인 시장 공략을 펼치고 있다.

이처럼 양사는 비슷한 제품을 판매하고 있는 데다 시장 점유율도 비슷해 판촉 경쟁을 벌이지 않을 수 없는 상태다.

특히 LG는 올해 판촉을 대폭 강화했다. 일부 제품의 경우 판촉비용도 지난해에 비해 20% 확대했다.

LG 측은 송주익 부사장이 올해 초 시무식에서 "가전 분야 만큼은 LG가 국내 1등뿐 아니라 세계 1등을 차지할 수 있도록 하자"고 말하는 등 올해를 기점으로 모든 분야에서 삼성을 따라잡겠다는 계획이다.

롯데마트의 이영준 바이어는 "7~8년 전만 해도 가전 분야에서는 LG가 앞섰지만 최근 몇년간 양문형 냉장고.드럼형 세탁기.고급형 TV분야에서 양사가 경쟁적으로 신제품을 출시하면서 요즘은 LG와 삼성이 비슷한 시장 점유율을 보인다"고 말했다.

◇가열되는 판촉전=양사의 사은품 양은 올 들어 대폭 늘어났다는 게 관계자들의 평가다.

LG는 엑스캔버스 LCD 프로젝션 TV를 사면 40만원 상당의 DVD콤비나 TV장식장을 준다. 삼성은 파브 PDP TV나 29인치 이상 LCD TV를 사면 80만원 상당의 셋톱박스나 15인치 LCD TV를 30만원에 살 수 있다.

테크노마트 양승원씨는 "지난해에는 TV를 사면 3만원짜리 DVD 타이틀을 주는 정도였지만 올해는 사은품 가격이 10배 이상 늘어났다"고 말했다.

소비심리 위축에 고전 중인 가전 유통업체로서는 이 같은 판촉 경쟁이 반가울 뿐이다.

용산 전자랜드 최진영씨는 "지난해에 비해 손님이 40% 이상 줄어든 데다 제품을 사려는 손님들도 평균 40분 이상 설명해야 겨우 구매를 결정할 정도로 돈 쓰는 데 조심스럽다"며 "그나마 업체들이 주는 사은품.경품 등이 많아져 구매를 권하기가 수월해졌다"고 말했다.

소비자들도 이 같은 판촉 경쟁이 나쁘지 않다.

테크노마트에서 만난 주부 이재희(35.서울 구로동)씨는 "연초의 에어컨 예약판매 때도 사은행사가 있었지만 구매를 주저했다"며 "하지만 요즘처럼 각종 혜택이 많은 때가 없는 것 같아 이번 사은행사 때 에어컨을 하나 사기로 했다"고 말했다.

전자랜드 이계형 과장은 "경기가 나빠지면서 소비자들이 가격에 더욱 민감해 지고 있다"며 "제품 자체의 가격을 인하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각 업체들은 사은품 확대를 통해 가격 인하 효과를 노리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글=박혜민 기자.사진=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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