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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 밥집 며느리 효심 … '뼈대 없는' 광주 떡갈비 만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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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광주광역시 송정리의 떡갈비. 두 쪽이 200g 1인분이다. 쇠고기와 돼지고기에 마늘·파·생강·배 등 20여 가지를 섞어 만든다. 상추나 초에 절인 무, 묵은 김치 등에 싸서 먹는다. [프리랜서 오종찬]
고(故) 최처자 할머니

누구는 그곳을 ‘유혹의 거리’라고 부른다. 어지간히 배가 부르지 않고서는 냄새에 이끌려 최소한 식당 안을 기웃거리게 마련이어서다. 광주광역시 광산구청 앞 ‘송정리 떡갈비 골목’이 그렇다. 200여m 거리에 16개 떡갈비 식당이 늘어선 곳이다. 평일 하루 2000~3000명, 주말이면 많게는 1만여 명까지 떡갈비를 찾아 이곳에 온다. 깃발을 따라다니는 일본·중국인 관광객 모습 역시 드물지 않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도 광주에 왔을 때 떡갈비 골목에서 식사를 했다.

 떡갈비는 궁중 음식으로 알려졌다. 임금 체면에 살점을 뜯으려고 갈빗대를 손에 쥐고 목에 힘줄이 돋아나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였을까. 살점을 따로 발라 다진 뒤 갖은 양념을 해서는 다시 뼈에 붙여 구워냈다. 이게 유배된 고위 관료들을 따라 퍼지면서 전남 담양 떡갈비 등이 생겼고, 궁중 나인들에 의해 경기 떡갈비가 태어났다.

 하지만 송정리 떡갈비는 유래가 좀 다르다. 1950년대 송정리 5일장 주변에서 친정 어머니와 밥집을 하던 고(故) 최처자 할머니가 처음 만들었다. 광주와 나주·영광을 잇는 길목에 있는 송정리는 송정역이 생긴 1913년부터 큰 장이 섰다. 온갖 먹거리가 모였고, 우시장과 도축장도 있었다. 한마디로 싱싱하고 좋은 재료를 싸게 구할 수 있는 곳이었다.

 여기서 최 할머니는 이가 튼튼하지 않은 시댁 어르신용으로 떡갈비를 개발했다. 쇠고기를 다진 뒤 온갖 야채와 양념을 섞어 넓적하게 구워냈다. 수라상에 오르던 떡갈비처럼 채소·양념과 반죽하듯 뭉친 살을 다시 갈빗대에 붙여 굽지는 않았다.

 맛본 집안 어르신들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식구들만 먹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맛있구나.” 그렇게 최 할머니 식당에 등장한 떡갈비는 이내 대표 메뉴가 됐다.

 최 할머니의 딸 김미(58·주부)씨는 “오전 2시면 어김없이 ‘탁탁탁탁’ 도마 위에 쇠고기를 올려놓고 칼로 다지는 소리가 들렸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준비를 하고도 낮 12시에야 문을 열었다. 최 할머니는 늘 “준비를 철저히 마치지 않으면 손님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음식점 밖에는 문 열기 전부터 긴 줄이 늘어섰다. 60~70년대 서슬퍼렇던 경찰서장이나 군수도 주민·상인들과 똑같이 줄 서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낮 12시에 문을 열고 오후 2시30분에는 문을 닫았다. 그래야 다음날 장사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16곳 떡갈비 식당이 늘어선 떡갈비 골목. [프리랜서 오종찬]

 최 할머니는 90년대 후반까지 40여 년간 식당을 하다 은퇴했다. 그 사이 최 할머니 식당에서 일하던 종업원들이 나와 하나 둘 떡갈비 식당을 차렸다. 그러면서 떡갈비 골목이 형성됐다. 그렇게 종업원이 가지를 친 뒤 이젠 그 2세가 대를 이어가는 곳도 있다.

최 할머니는 정작 5남2녀 자식들에겐 “힘들다”며 식당을 하지 못하게 했다. 할머니는 2000년대 후반 세상을 떠났다. 상인들로 구성된 송정리 떡갈비연합회는 할머니를 기리기 위해, 또 다툼을 없애기 위해 ‘원조’라는 표현을 쓰지 않기로 합의했다.

 송정리 떡갈비는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한번 변신했다. 국민들 살림은 팍팍해지는데 쇠고기 값은 뛰었다. 송정리는 돼지고기를 섞어 값을 안정시키는 쪽을 택했다. 돼지고기의 기름기 때문인지 오히려 “부드러워졌다”며 손님이 늘었다고 한다.

떡갈비를 굽는 모습. 숯불이나 연탄불에 석쇠를 얹고 5~7분 구워낸다. [프리랜서 오종찬]

 시간이 지나면서 먹는 법과 조리법이 다양해졌다. 애초엔 상추에 싸 먹었으나 이젠 쌈용으로 남도 특유의 묵은 김치나 얇게 저며 초에 절인 무를 내놓기도 한다. 신세대 입맛에 맞춰 각종 허브 향을 첨가하는 곳도 있다. 오리고기 떡갈비까지 개발됐다.

나들이객이 미리 주문하면 시간에 맞춰 구워 포장해주는 ‘테이크 아웃’ 메뉴도 나왔다. 그러면서도 냉동식품으로 만들어 대량생산할 생각은 않는다. 얼리면 맛이 떨어져 송정리 떡갈비의 명성에 금이 갈까봐서다. 당장 돈을 좀 더 벌 수는 있겠지만 해서는 안 된다고 떡갈비연합회 상인들이 합의를 봤다.

이렇게 큰 틀에선 한 뜻을 이루면서도 갈수록 떡갈비 골목 내 차별화 경쟁은 치열해지고 있다. 웰빙 트렌드에 맞춰 떡갈비를 찍어 먹는 소스에 꿀을 넣고, 야채는 친환경 재배를 한 것만 사용하는 등이다.

 값은 ‘서민 음식’이라고 할 만큼 싸지는 않다. 1인분 200g에 1만1000원 정도고, 보통 7000~8000원 비빔밥을 함께 먹는다. 한 끼에 1인당 2만원이 드는 셈이다. 떡갈비연합회 최영환(61) 총무는 “송정리 떡갈비가 이름나면서 이곳저곳에 ‘송정리 떡갈비’라는 이름을 쓰는 음식점들이 늘고 있다”며 “이런 음식점들이 자칫 브랜드 가치를 깎아내릴 수도 있어 ‘송정리 떡갈비’를 지리적 상표등록 하는 작업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명물이 된 조연 ‘돼지뼈 국물’ 광주광역시 송정리 떡갈비골목에는 또 하나 명물이 있다. 떡갈비에 앞서 내놓는 돼지뼈 우린 국물이다. 2005년 이곳에 온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 자리에서 국물만 세 그릇을 들이켰다고 한다. 떡갈비 보다 속풀이용 국물을 찾아 이 거리에 오는 주당(酒黨)들도 있다.

101년 ‘송정 5일장’ 숨겨진 맛
돼지 내장·순대 푸짐한 '국밥', 장날엔 광주 넥타이부대 북적

송정리 떡갈비 골목은 대도시에서 보기 힘든 전통 5일 장터에 붙어 있다. 3일·8일에 열리는 송정 5일장이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장날이면 상인 1000여 명이 가게를 차리는 초대형 5일장이었다. 광산구청에 따르면 요즘도 장날엔 상인에 손님까지 1만 명 이상이 온다. 장날과 주말이 겹치면 3만 명이 찾을 때도 있다.

 송정 5일장에도 대표 음식이 있다. 국밥과 팥죽이다. 국밥은 돼지 머릿고기와 내장·선지·순대를 담아 끓여낸다. 장날이면 한 그릇 먹으려고 광주 시내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이 차로 20~30분을 달려 이곳을 찾기도 한다. 원하면 밥과 국물은 무제한 리필(refill)해 준다. 하지만 애초부터 워낙 푸짐하게 나와 리필을 요청하는 손님은 거의 없다. 한 그릇에 5000~7000원이다.

 식사량이 좀 적은 편이라면 팥죽으로도 한 끼를 때울 수 있다. 한 그릇에 작은 것은 3000원, 큰 것은 4000원을 받는다. 여름엔 팥죽집에 팥빙수 같은 메뉴도 등장한다.

  직장인 이현숙(46)씨는 “기계적으로 쇼핑을 하는 대형마트와 달리 송정 5일장에선 사람 사는 맛을 볼 수 있어 한 달에 서너 차례 이곳을 찾는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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