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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의 칼럼] 너무 낮은 표적항암제 보험등재율 암환자 희망 꺾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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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면

암환자 100만 명 시대다. 암환자는 질환 자체에 대한 부담뿐 아니라 경제적 부담도 크다. 암환자 가족은 다른 환자 가족보다 2배 이상 많은 의료비를 지출한다고 한다. 정부는 환자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4대 중증 질환(암·심장·뇌혈관·희귀난치성) 보장성 강화 정책을 추진했다. 특히 고가 신약인 항암제·희귀질환치료제 등에 대한 환자 접근성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실은 환자의 기대와는 다르다. 생사에 꼭 필요한 치료제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은 몇 년씩 걸린다.

 비소세포성 폐암 3기 판정을 받은 A씨(27·여)는 수술이 불가능한 상태로 ALK양성 비소세포폐암임을 알게 됐다. ALK양성 비소세포폐암 치료를 위한 맞춤형 표적항암제(잴코리)가 이미 개발돼 있지만 국내에서는 비급여인 탓에 환자는 기존의 항암치료를 유지해야 했다. 하지만 항암치료가 전혀 효과가 없어 경제적 부담에도 잴코리를 복용하게 됐다. 그 결과 암세포 크기는 현격히 줄고, 약제 독성이 없어 환자는 일반인과 같은 생활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수개월이 지나지 않아 환자는 약값을 더 이상 부담할 수 없게 됐다. 치료를 중도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희망의 맞춤형 표적항암제가 그녀에게는 고문이 된 셈이다.

 최근 개발되고 있는 맞춤형 표적항암제들은 치료 전에 효과적으로 반응할 환자만 선별해 치료함으로써 항암 효과를 극대화한다. 앞서 언급한 잴코리는 전체 비소세포폐암 환자의 4% 정도에만 해당하는 희귀암종의 표적항암제다. 기존 전이성 폐암 환자의 기대여명이 1년을 넘지 못하는 것에 반해 잴코리는 20개월 이상 생존기간을 연장시킨다. 이러한 표적항암제를 복용할 경우 환자의 생존기간과 삶의 질이 기존 항암치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향상된다. 혁신적인 맞춤치료가 가능해짐에도 표적항암제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은 매우 어렵고 까다롭다. 그 혜택이 암환자에게 전달되지 않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한국의 항암제 보험등재율은 33%로 외국(53~57%)에 비해 월등히 낮다. 또 다른 약에 비해 국내 허가 이후부터 급여 승인까지 걸리는 시간이 평균 2배 정도로 길다. 이러한 상황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환자들이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결과를 야기한다.

 의료시스템과 의료비용을 강력하게 규제하는 영국조차도 2009년 말기암환자 치료 기준(End of life therapy guidance)을 제정해 ‘드문 암종으로 기대여명이 2년이 되지 않으며, 기존 치료에 비해 3개월 이상의 생존기간을 연장하는 항암제’는 가격이 높아도 국가가 비용을 지불하도록 했다. 암 치료에 있어 가장 중요한 목적은 환자의 삶의 질 향상과 생존이다. 정부가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를 전격 시행하고 있는 만큼 암환자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표적항암제에 건강보험급여를 적용해 더 많은 암환자가 삶에 대한 희망을 이어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삼성서울병원 안명주 혈액종양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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