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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현실에대한 정직한 인식을 바탕으로 『자유시』동인들|비애를 객관적 시선으로 잔잔하게 그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시대의 아픔이 그의 아픔이 되고, 다시 나의 아픔이 되는, 그리하여 역사의 현장에서 한국인의 언어와 신화를 이룩해 나가려는 작은, 그러나 매우 정직한 노력들이 최근의 한국시단에 엿보이고 있다. 정호승·김명인등을 포함하고 있는 동인지「반시」의 젋은 시인들과 김광규·신대철·장영수·이진화·문충성등 일군의 새로운 시인들이 그들인데, 여기에 이번에 4집음 내놓고 있는「자유시」동인들의 활동이 또한 각별한 주목을 끈다. 4집에 작품을 발표한 시인들은 이하석·이태수·이동순·이기철·서원동·박해수·강현국등이다.
현실과 예술에대한 정확하고도 정직한 인식을 기초로하고 있다는 점이 귀중하게도 공통된다. 이런 점에서 볼때 항만 가르면 시가 되느니, 시인 자신도 잘모르는 이상하고 어려운 소리를 해야 현대시 행세를하느니하는 그동안의 오랜구설을 헤치고, 이제 한국의 현대시도 제대로의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회심의 느낌을 가져도 좋을것 같다.
예컨대 토색적인 「샤머니금」의 세계를 그리는 것만이 한국인의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일종의 허위라고 한다면「모더니즘」운운 혹은 의식과 내면의시 운운하면서 쓸데없이 난해한 조어와 조사를 일삼았던 많은 50, 60년대의 시들을 허세의 태도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현실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기초로 잡히지 않은 마당에 그것을 다루어 말을 만들어야 할기량파 수법이 제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말하자면 이런 의미에서 바라볼 때, 충분하다고 할수는 없을지언정 새로운시인들의 시각과 솜씨는 훨씬 발전적이다.
7명의 「자유시」동인들 작품은 각기 다른 독특한 개성위에서 바로 이같은 공통성이 있어 보인다. 그들은 모두<도시의 숨통만한빈 터를 지나 개발지역으로 들어서니 해머소리 사나운> (강현국)시대에 살고 있음을 고백하면서도<가야금 뜯는 알몸의 여귀야 소리귀신인가 물귀신인가> (박해수)를 묻지 않을수 없는 의식의 소유자들이다. 이들중 특히 강한호소력으로 다가오는 이하우과 이태수의 세계는 혹은 분단으로 허리잘린 국토에 사는 삶의 황폐함이, 혹은 공업화에 신들린 현실의 배면에 파묻힌 꿈의 망령이 각기 아름다운 묘사와 절제에 의해 독자들에게 아픈 감동을 유발하고 있다. 이하석은 『신천』『비무장 지대』『임진강』『연탄재들』『풀씨하나 떠돌다가』등 5편을 발표하고 있는데 그중『비무장지대』와 『임진강』은 제목대로 분단민족의 비애를 그린 것이다.
그러나 그의 비애는 현장을 보는 정직한 시선과 그것을 수용하는 시인 자신의 철저한 객관화로 비무강지대를 시의 대상으로 정립케하고 그럼으로써 잔잔한, 그러면서도 깊은 정신의 금을 긋고 지나간다.
그 황폐한 땅속에서도 시적 자아를 잃지 않음으로써 우리 모두에게도 그것을 황폐한 현실로 받아들이게 하는 독자로서의 자아를 잃지않게 하는것이다.
이런 그의 능력은 그중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생각되는 『연탄재들』에서 <민들레 꽃이 황토비탈에서 잠깐 피었다 진 후 병사들은 다시 주위의 풀들을 뽑아 버렸다>와 같은 일견평범하면서도 의미있는 함축의 표현을 얻게 한다.
이하석이 묘사의 기법을익히고 그것을 통해 비극적인 한국의 현실을 대상화하고 있다면『다시 그림자의 그늘』『휴지처럼 먼지처럼』『낮에 꾸는 꿈』『눈내리는 날』『봄 신기루』등을 발표하고있는 이태수는 자기 스스로의 자의식이 시의 모태가 되고 있는 경우다.
허물벗고 있는 그의 꿈은 여기서 무엇인가 밖의 현실로부터 유래하고 있다는 불길한 예감에 동의하게 된다. 그리고 낮에도 꿈을 꿀수 밖에 없고 휴지나 먼지처럼 떠돌 수밖에 없는 가위눌린 의식이 이 시대 공포의 한 자기반영이라는 추측에 닿는다. 짐주연 <숙대교수·문학평론가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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