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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현재 합리화 위해 하나님의 뜻 말하는 건 위험" "기독교는 고난의 의미 속에 하나님 의지 있다고 믿어"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하나님은 미국을 축복하는 게 아니라 저주한다.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면 저주받게 된다고 성경에 나와 있다. 미국이 9·11 테러 공격을 받게 된 것은 미국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여 년간 다니던 교회의 제레미아 라이트 목사가 한 말이다. 2008년 미국 대선 당시 오바마 민주당 후보는 그의 신념에 큰 영향을 미친 라이트 목사의 발언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최근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사퇴에서 쟁점 중 하나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해석이었다.
 
한국 사회에 논란과 화두를 던진 ‘하나님의 뜻’에 대해 조명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24일 양권석(전 성공회대 총장, 영국 버밍엄대 신학박사) 신부와 김영준(기쁜소식교회 담임목사, 예일대 철학 학사, 컬럼비아대 법무 박사, 풀러신학대학원 목회학 석사) 목사가 참석했다. 다음은 좌담회 요지.

-하나님의 뜻 논란이 남긴 것은.
 ▶김영준 목사=이제 정치적인 쟁점이 아니라 철학적인 차원에서 그분이 한국 사회에 던진 귀중한 화두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대화해야 한다. 그분 강의에 대한 언론 보도를 처음 접했을 때에는 거부감을 가졌다. 주일 예배에서 참회기도할 때 깨달음이 왔다. 민족과 국가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도 없으면서 남을 너무 쉽게 비판하면 안 된다는 깨달음이었다. 그분 강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양권석 신부=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을 쓸 때 지극히 신중해야 한다. 개인이나 집단의 이기적 욕망이 하나님의 뜻으로 둔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역사에서 그런 경우가 사실은 너무나 많았다. 잘못된 역사 해석이나 하나님의 뜻 해석은 윤리적 마비상태를 가져올 수도 있다. 하나님 뜻이라는 말에 담긴 수많은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이라는 맥락을 배제한 채 결과만 놓고 운명론적·결정론적으로 역사를 해석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참 애석하다. 한국 기독교가 앞으로 국민으로부터 점점 더 외면받을 수 있겠다는 걱정도 하게 됐다.

하나님 뜻은 끊임없이 물어야
-하나님의 뜻의 배경은.
 ▶김=기독교는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삼는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면, 왜 고난이 있느냐’는 질문으로 하나님 뜻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한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고민은, 국가와 민족 차원 이전에 우선 인간 개개인이 처한 고난의 현실에서 비롯됐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사 이집트에 종으로 팔려 갔다. 오랜 고난 끝에 총리가 되고 가족들과 다시 만난다. 형들은 보복을 두려워하지만 요셉은 “나를 이집트에 보낸 건 형님들이 아니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큰 구원을 이루기 위해 이 일을 행하셨다”고 말한다.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하나님의 섭리 차원에서 재해석한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수많은 젊은이가 죽는 상황에서 많은 사람이 질문했다. ‘하나님께서 계신다면 왜 이런 식의 무의미한 죽음들을 허용하실까’. 영국 성공회 평신도였던 유명 작가 C S 루이스는 이렇게 설명했다. 전쟁이 없고 재앙이 없고 모든 것이 편안하면 사람들은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욕심대로 산다. 오히려 이런 고난이 있음으로 해서 젊은이들이 영혼의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하나님을 찾게 된다.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큰 섭리 안에서 모든 것이 이뤄진다고 믿는다. 그런 믿음에 기초해 역사의 결과를 낙관한다. 지금은 고통스럽지만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더 큰 선한 목적을 이루신다는 것이다. 그것을 말하려는 것이지 ‘하나님이 원해서 요셉을 종으로 팔았다’ ‘하나님이 원해서 전쟁이 일어났다’는 식의 해석을 내세우려는 게 아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이루기 위해 고통을 허락하시는 것이다. 총리 후보가 하고자 했던 말도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것을 하나님이 원했다’는 게 아니라고 본다.
 ‘한국이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은 것은 하나님의 뜻이냐’고 누가 질문한다고 치자. 기독교인의 대답은 ‘그렇다’가 아니다. ’하나님 뜻이 아니었다면,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지 못했을 것이다’고 말해야 한다. 두 대답에는 차이가 있다. 고난의 의미를 신앙으로 이해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것을 믿고 깨닫는 게 크리스천이다.

2001년 9월 11일 테러집단에 의해 뉴욕의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공격당하는 장면.

 ▶양=하나님의 뜻에는 목표가 있다. 이미 일어난 일의 합리화가 아니라 ‘무엇을 향해서’라는 질문이 선행돼야 한다. 기독교가 역사를 이해하는 방식은 목적론적이다. ‘어떤 목표를 향해서 가는 역사냐’라는 관점에서 ‘당신이 진정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제가 가고 있는 이 길이 당신의 길입니까’라고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과거나 현재를 합리화하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말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투투 대주교가 UC버클리에서 강연을 했다. 강연 취지는 이랬다. 아파르트헤이트 시대는 마치 절벽에 매달린 것 같은 시대였다. 오랜 투쟁의 과정이었다. 함께해 줄 수 있는 위로의 하나님이 진짜 필요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이 필요했다. 그 당시 UC버클리 대학생들이 등교를 거부하고 우리와 함께 싸웠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큰 힘이 됐는지 모른다.
 온 의지를 다해 투쟁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마지막에 “이것은 제 뜻이 아니고, 제가 한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하고 고백하는 것과 “이미 결정됐었다”고 미리 말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하나님의 뜻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이다. 하나님 뜻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의 미래에 대한 것이다. 부자 나라가 되는 것, 단지 대한민국만 잘되는 세상이 오는 것, 특정한 사람들만 잘사는 나라가 되는 것, 특정한 역사의 권력자들만이 권세를 누리는 것은 올바른 신앙과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보다 근원적이고 궁극적인 목표로 제대로 걸어 가기 위해 열심히 자기에게 주어진 자유의지를 행사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뜻이 이뤄지는 나라가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하나님의 나라라고 본다.

 -우파 기독교뿐만 아니라 좌파 기독교도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김=좌우의 입장으로 나눠 하나님의 뜻을 말한다는 것 자체가 지극히 한국적인 상황이다. 교리를 좌파냐 우파냐에 따라 나눌 수는 없다. 한국에서는 사실 좌파·우파 분열이 어떤 종교적인 차이보다도 깊다. 한데 종교적인 차이보다 정치적인 차이의 해결이 더 어렵다. 요즘에는 사윗감·며느릿감을 볼 때 정치 성향부터 묻는다고 한다. 총만 안 들었지 정치가 전쟁의 역할을 하고 있다. ‘전쟁은 정치의 또 다른 방법이다’고 하는데 대한민국에선 오히려 ‘정치가 전쟁의 또 다른 방법’이 되고 있다.
 기독교인들마저 좌파·우파로 나뉘어 신앙과 성경을 정치적 담론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신앙적으로나 성경적으로나 정직하지 못한 것이다. 이념적 관점에서 성경과 신앙을 해석하는 것은 하나의 우상이다.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이름을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악용하는 것이다.
 신학자 카를 바르트는 “하나님은 인간과 절대적으로 다른 존재다”고 말했다. 하나님의 ‘타자성(他者性)’을 강조했다. 바르트는 인간이 너무 쉽게 자신의 의견·사상·감정·편견을 하나님의 이름을 빌려 말한다고 지적했다. 그것은 하나님을 인간의 형상으로 만드는 행위다. 하나님의 뜻 운운하는 것은 담론을 종식시키는 행위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데 누가 뭐라고 말하겠는가.
 깊이 기도하고 고민하다 보면 하나님 뜻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고 본다. 누가 내게 강요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스스로 깨달아야 되는 거다. 자신이 스스로 깨닫고 ‘내가 이렇게 된 것은 하나님 뜻이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다른 누가 뭐라고 말할 권한이 없다. 자기 문제에 대한 깊은 고민과 믿음으로 그 결론에 도달했는데, 거기에 대해 그 고난을 당해 보지도 않은 다른 사람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건 그 사람에 대한 모독이다.

자유의지 뺀 예정은 존재할 수 없어
▶양=신자라면 누구나 하나님의 뜻을 추구한다. 내가 믿는 분이 어떻게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희망하는지를 하나님과 함께 찾는 게 당연하다. 그 과정에서 역사도 해석하고, 성서도 해석하게 되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과정이다. 한데 기독교인들이 조금 착각하는 게 있다. 우리가 예배를 본다는 것은 공적인 행위다. 사적인 행위가 아니다. 교회에서 행하는 모든 행위는 지극히 공적인 행위다. 개인이 골방에서 기도하는 것과 다르다. 공적으로 행동할 때에는 사회적으로 어떻게 연관되는지에 대해 지극히 예민해야 한다. 사회의 공익, 윤리적 판단과 어떻게 관련되는지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 교회에 안타까운 점이 많다. 공적인 표현에 대해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절대 다른 사람이 터치할 문제가 아니다’는 식으로 말하면 안 된다고 본다.

 -자유의지론과 ‘하나님의 뜻’을 중시하는 예정론은 충돌하는가.
 ▶양=신학적으로 보면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 모습은 굉장히 다양하다. ‘이미 정해진 대로 너희들은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결정론적인 모습으로 하나님이 나타나는가 하면, 예언서에서처럼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하나님도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뜻에 따라 하나님께서 생각을 바꾸시기도 한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는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었다.
 전체 교회 역사를 보면, 우리 인간의 자유의지와 하느님의 뜻이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이뤄진다는 신조(信條)와 신학이 전개됐다. 하나님 자신이 그런 의지를 가진 분이라고 해석됐다. 자유의지를 뺀 예정은 존재할 수 없다. 예정 없이 자유 의지만 얘기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김=예정론이 말하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은 폭군이다’라든가 ‘운명이 예정돼 있다’라든가가 아니라 인간이 하도 완전히 타락했기 때문에 인간에겐 하나님의 역할 없이 자신의 의지나 선택으로 스스로 구원할 수 있는 힘이 없다는 것이다. 운명론적으로 모든 것이 정해졌고, 사람이 아무리 애를 써도 바꿀 수 없다는 말을 하려고 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예정을 믿는다고 해서 ‘우리는 아무 노력도 안 해도 된다’ ‘모든 게 저절로 이뤄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그의 IQ는 100억도 아니고 1000조도 아니고 무한대다. 그런 하나님이 자신의 뜻을 계시로 전달한다면 사람의 머리가 터져 버리지 않을까.
 ▶김=‘어떻게(How)’ 차원에서 ‘하나님이 우주를 어떻게 만드셨느냐’에 대해 말씀하신다면 인간은 터져 버릴 것이다. 기술·과학적인 지식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옛사람들은 ‘어떻게?’를 감당하는 데 한계가 있었기에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이 창조의 첫날에는 뭘 만들고, 둘째 날에는 뭘 만들고 하는 식으로 쉽고 단순하게 기록했다. 하지만 ‘왜(Why)’의 차원은 다르다. 그건 지능 용량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됐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고 본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도 이 ‘왜’에 해당하는 문제다. 인간이 왜 창조됐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인간이 알 필요가 있는 만큼은 하나님께서 다 알려 주실 수 있다.

 -기도란 하나님의 뜻에 영향을 미치려는 인간의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김=미국에서 기도를 가장 많이 하는 도시가 라스베이거스라고 한다. 어떤 더 큰 차원의 유익과 선을 기도해야 한다. ‘아무개가 백일 기도해서 애가 일류대학 들어갔다’는 풍문을 들으면 혹하기도 한다. 그렇게 안 하는 ‘나는 바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반칙’을 하는 성도들이 사실은 문제다.
 ▶양=기도는 하나님과 신자의 은밀한 대화다. 어느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굴복시키는 게 아니라 대화 다음에 둘 다 달라진다는 게 진짜 좋은 대화다. 내가 원하는 것만을 위하는 기도는 독백이다. 단독적 행위다. 기도하는 대화는 그런 것이 아니다.

김환영 기자·박종화 인턴기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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