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어린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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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0면

고려시대에서 이조말에 이르기까지 중앙정부나 지방관으로부터 표창받은 효자는 1천명이 넘는다.
이를테면 관정효자들이다. 이들은 대충 15가지의 틀로 나누어진다. 중국의 일평사효를 그대로 본뜬 것이다.
효자가 6백년동안에 1천명밖에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효란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그런 효자를 모두 표창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당연히 남이 생각도 못하는 효행을 해야했다.
관정효자중에서 제일 흔했던 것이 여묘3년이었다.
부모가 죽은후에 무덤옆에 초려를짓고 3년동안을 마치 부모가 살아계신양 모시는 것이다.
둘쨋번으로 흔한게 단지였다. 병든부모를 위해 자기 약손가락을 잘라서 피를 약에 타드리는 따위다.
이걸보면 옛날에는 효란 요새보다 몇십곱 더 어려웠던게 분명하다. 그러나 또 효처럼 우스꽝스러운게 없다.
효자가 여묘3년 하는동안에 논밭이 다 황폐되어도 상관하지 않았다. 실제로 자기 집에 불이나도 상청밖을 나가지 않은 효자의 기록도 남아있다.
그러나 옛 관정효자중에는 엉터리가 많았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효자로 한번 뽑히면 병역이 면제되는 것은 물론이요, 한밑천 크게 잡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적당히 거짓효자를 꾸며내고는 뇌물로 지방관을 구워삶아서 효자로 뽑히도록하는 일이 흔했던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당대에 효자로 꼽히는 것보다는 몇십년후에 정표되는 일이 더 많았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이른바 효자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마을사람들이 진실을 알고있으니까 거짓말을 하기가 어려웠다. 반면에 몇십년후에는 허위를 반궤할 도리가 없게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기록에 남아있는 효자중에는 참다운 효자가 드물었다. 그저 효자상을 타기위해 여묘3년의 고항을 치른 엉터리들도 많았던게 틀림이 없다.
본두가 서울특별시와 공동으로마련한 「서울어린이상·서울청소년상」의 제1회 수상자들이 이제 선정되었다.
대상을 받은 한연정양은 8세때부터 살림을 위해 행상길에 나선 어머니를 대신해서 아버지의 병간호를 하고 어린동생을 돌봤다. 그리고 고사리손으로 밥을 짓고 빨래릍 하고 설겆이를 했다.
어머니마저 병들어 눕자 이번에는신문배달·삯빨래질·쓰레기 치워주기등 닥치는대로일을 맡아했다.
그러기를5년.
그녀는 여묘3년도, 단지도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조5백년동안의 그어느 효자보다도 더참되고 훌륭한 효녀임에 틀림이 없다.
그녀는 효녀상을 타려고 효를 한것도 아니다. 그녀는 효가 뭣인지를 배우지도 않았다. 그녀는 그저 「콩쥐」의 마음씨를 닮았을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가 가난하기때문에 지닐 수 있던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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