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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딸이 좋아" … 내년부터 여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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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송옥란(89·서울 양천구) 할머니는 매일 아파트 단지 경로당을 찾는다. 여기에는 할머니는 20명인데, 할아버지는 9명뿐이다. 전체의 68%가 여자다. 송 할머니는 “어딜 가나 ‘할배(할아버지의 경상도 사투리식 표현)’가 참 귀하다”고 말했다. 어떤 경로당에는 할머니가 대부분을 차지해 할아버지가 아예 경로당 출입을 못하는 경우도 있다.

 내년부터 한국이 ‘여초(女超)사회’로 바뀐다. 경로당은 여초사회의 단면이다. 26일 여성가족부·통계청의 ‘2014년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 자료에 따르면 내년 국내 여성인구는 2531만5000명으로 예상된다. 남성(2530만3000명)을 앞지를 것으로 전망됐다. 1960년 이런 통계를 작성한 이후 처음이다. 내년 이후에도 여초 현상이 더 심해져 2020년에는 여성 100명당 남성이 99.4명으로 줄고, 2030년엔 98.6명으로 떨어진다.

 여초시대로 바뀌는 이유는 남아(男兒)가 덜 태어나고 일찍 숨지기 때문이다. 남아 선호 현상이 사라지면서 남아 출생 자체가 줄었다. 2000년 여아 100명당 남아 비율이 110.2명이었는데 지난해엔 105.3명으로 줄었다. 자연상태에 가까운 ‘정상 성비’(103~107)가 됐다.

 올해 10월 첫 출산을 앞둔 이현정(34·서울 영등포구)씨는 “배 속의 아기가 딸이라는 얘기를 듣고 더 기뻤다”며 “요즘엔 친구들끼리 ‘딸 낳는 비법’을 공유할 정도로 딸 낳기를 바라는 가정이 많다”고 말했다.

 여아가 남아보다 훨씬 오래 살아서 전체적으로 여성 숫자가 늘어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2년 기준으로 여성의 기대수명은 84.6세다. 남성(77.9세)보다 6.7년이 길다. 지난해 국내 100세 이상 노인(3485명)의 85%(2953명)는 여성이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삼식 출산정책연구본부장은 “여성의 기대수명이 남성보다 높은 것은 세계적인 현상”이라며 “남성이 산업재해 피해자가 많고 음주·흡연 등 건강에 나쁜 행위를 많이 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2012년 기준 20세 이상 여성 흡연자는 100명 중 4명이었다. 남성(44.9%)의 10분의 1이 안 된다. 음주 비율도 57.2%로 남성(81.9%)보다 낮다.

 여성의 약진 현상은 곳곳에서 확인된다. 2009년 여학생의 대학 진학률이 처음으로 남학생을 앞질렀다. 이후 격차가 계속 벌어져 지난해 여학생의 진학률(74.5%)이 남학생(67.4%)보다 7.1%포인트나 높았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과거엔 수학·과학의 학업성취도가 남학생이 높았으나 최근에는 비슷하거나 여학생이 낫다”고 말했다. 지난해 마지막으로 치른 외무고시 합격자의 59.5%가 여성이었다. 사법고시의 여성 합격자 비율은 2000년 18.9%에서 지난해 40.2%까지 높아졌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난주 박사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여전히 낮기 때문에 전체 인구에서 여성 비율이 높아진 것은 실질적 의미는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50.2%로 남성(73.2%)에 비해 여전히 낮았다. 지난해 여성고용률(53.9%)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57.2%)에 훨씬 못 미친다. 대다수가 결혼·임신·출산에 발목이 잡혔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고위직에 오르는 여성 비율은 여전히 낮다. 지난해 전체 공무원 중 여성은 10명 중 4명(42.8%)꼴이었지만 4급(중앙부처 서기관) 이상은 8.8%였다. 김 박사는 “인구 비율보다는 여성이 갈 수 있는 일자리가 늘고 임금 격차가 줄어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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