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와 준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근년에 들어「유럽」의「오지」인 영국을 찾는 한국인수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얼마전에는 대학학도호국단 간부 20명이 문교부 주선으로 왔었다.
「옥스퍼드」대학도 두러보고 「런던」의 관광명소도 찾는등 4박5일의 일정을 마치고「유럽」일주길로 떠났다.
최근에는 19명의 통일주체국민회의 대표가 2명의 사무국측 직원들의 안내를 받으며「런던」을 방문했었다.
이들도 국회의사당을 비롯한 관광명소들을 둘러보고 갔다. 한 대표는 여행목적이「산업시찰」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기업의 대표, 정부기관 및 사회단체대표들이 시찰이나 공무로「런던」을 찾는 예가 많았지만「산업시찰」유의 여행목적으로 온 것은 처음인 것같다. 국력신장의 한 표상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어차피 어렵게 번 외화를 들여서 오는「산업시찰」이라면 좀더 생산적인 방향으로 오는 사람이나 보내는 기관이 철저한 목적의식을 가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여학생들도 포함된 학도호국단 방문단의 경우「옥스퍼드」의 대학촌을 밖에서 구경만 했을뿐 강의실을 돌아보지도 않았고 학생들과 만나 토론할 기회도 마련되지 않았다.
또 학교의 전통과 현황을 설명해 준 그 대학교수가『질문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우리 학생들은 단 한사람도 질문이 없어서 분위기가 퍽 어색했었다고 동행했던 한 교수가 말했다.
「옥스퍼드」에 대해 사전지식이 충분해서 물을 것이 없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일반관광객과 마찬가지로「증명사진」을 찍는 이상의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으면 어쩌나 싶은 생각도 든다.
영국의 속담에『당나귀가 여행을 떠난다고 해서 준마가 되어서 돌아오지는 않는다』는 말이 있다.
진지한 목적과 새 마음가짐으로 떠난다면 여행이라고 모두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앞으로 외국「산업시찰」이 본격적으로 실시될 것이라면 당나귀가 준마로 돌아오게 하는 최소한의 노력정도는 들여야 아까운 외화지출의 정당성을 찾지 않을까? <장두성 「런던」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