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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자수해" 임 "돌아가면 사형" … 펜·종이 요구 뒤 "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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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임모(22) 병장이 자살 시도 끝에 결국 군에 체포됐다. GOP(일반전초)에서 동료 5명을 살해, 7명에게 부상을 입히고 도주한 지 42시간40분 만이다. 무장 탈영한 임 병장이 지난 22일 오후 명파리 민통선 지역에서 수색조에 발각돼 대치가 시작된 뒤에는 23시간38분이 흘렀다. 군은 임 병장 생포 과정에서 그동안의 병사 제압 작전과 다른 ‘네고시에이팅(negotiating·협상) 작전’을 폈다. 당초 사건이 발생한 21일 밤까지만 해도 “위험 상황 시 사살해도 좋다”는 작전 지시를 내렸다. 22일 오후 2시23분 명파초등학교 인근에서 임 병장과 군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진 것도 이런 정황을 뒷받침한다. 하지만 당시 임 병장이 극도로 불안한 심리상태였기에 교전으로 인한 추가 사상자 발생이나 자살 가능성이 농후한 것으로 군은 판단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심리전 교육을 받은 703특공연대 등을 투입하며 차분히 임 병장을 포위·압박해 투항을 유도하는 전략으로 방향을 틀었다. 군은 길이 4㎞, 폭 1㎞ 포위망을 구축하고 부모의 육성을 빌려 임 병장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22일 오후 11시30분쯤 군의 차단선인 마달리 대진고개 근처에서 임 병장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접근해 10여 발 사격이 오갔을 뿐 밤샘 작전은 없었다. 방송 소리를 총소리로 오인할 수 있기에 스피커도 사용하지 않았다. 국방부는 “밤에는 시야 확보가 안 돼 오인 사격 가능성이 높고 심리상태가 예민해지기 때문에 야간 작전을 따로 시행하지 않았다”며 “포위망을 구축하고 고착 상태를 유지했다”고 설명했다.

 23일 아침부턴 적극적인 설득 전략을 폈다. 오전 8시20분쯤 총기사고 발생 7㎞ 지점인 현내면 무송정 인근에서 임 병장을 발견한 군은 사살 의도가 없다는 점을 명확하게 밝히며 임 병장을 안심시켰다. 703특공연대장과 특공연대 중대장, 8군단 헌병대장 3명은 비무장 상태로 총부리를 겨누는 임 병장에게 다가가 투항하라고 설득했다.

 임 병장은 울먹이며 “아버지와 통화하고 싶다”고 했다. 수색대원들이 7~8m 거리까지 다가가 휴대전화를 건네 8시40분쯤 통화가 이뤄졌다. 임 병장 아버지는 아들과 통화했다. 안정을 찾은 임 병장은 먹을 것을 요구했고 군은 빵과 물, 전투식량을 10m 거리에서 던져 건넸다. 부모는 계속 “내 심정이 무너진다. 제발 그만두고 자수하라”고 설득했지만 임 병장은 “나는 어차피 엄청난 일을 저질렀는데 돌아가면 사형 아니냐”는 식의 답을 반복했다. 오후 2시30분 종이와 펜을 달라고 해 뭔가 적더니 오후 2시55분 갖고 있던 K-2 소총을 자신의 왼쪽 가슴과 어깨 사이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군은 즉시 임 병장을 강릉 소재 병원으로 이송했다. 처음 국군 강릉병원으로 갔으나 상태가 위중해 다시 강릉 아산병원으로 옮겼다. 임 병장은 피를 많이 흘렸음에도 한동안 의식을 잃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오후 5시30분쯤 강릉 아산병원에 도착한 임 병장은 파란 천으로 덮여 있었다. 천을 바꾼 듯 피는 배어있지 않았다. 이 병원에 있는, 그의 총격으로 다친 장병들을 의식해서인지 임 병장은 병원 건물 뒤쪽 엘리베이터를 통해 수술실로 갔다. 수술실 앞에 달아놓게 마련인 환자 이름도 없었다. 임 병장이 같은 병원에 왔다는 소식을 들은 신모(20) 이병 등 총기 난사 부상자 가족들은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임 병장의 가족은 일반인 출입이 통제된 강릉 아산병원 2층 수술실 내 복도에서 수술 결과를 기다렸다. 어머니는 계속 울기만 했다. 수술은 3시간가량 이어졌고 임 병장은 중환자실로 옮겼다. 생명엔 지장이 없는 상태다.

 이날 상황이 종료됨에 따라 오후 3시30분 ‘진돗개 하나’가 해제됐다. 이에 따라 군 통제도 사라져 22일 오후 대진 초·중·고 체육관으로 대피했던 명파·마달·배봉리 등 4개 마을 주민들은 집으로 되돌아갔다. 명파리 주민 김영빈(55)씨는 “집에 돌아오게 돼 다행이지만 사상자가 많이 나와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희생자 가족 보상 합의=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통합병원에 안치된 희생 장병 5명의 가족들은 5일장을 치르고 27일 발인하기로 국방부와 합의했다. 24일부터는 수도통합병원 안 합동분향소에서 일반인 조문을 받는다. 시신은 일단 24일 오전에 부검하기로 했다. 희생자 가족들은 “보상금 문제도 해결됐으며 사고 조사에 협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고인에 대한 예우도 있어 보상금 액수 등은 밝히지 않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보상금은 계급에 따라 약간 차이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들은 희생 장병들을 전사자로 예우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가족들에 따르면 국방부 측은 “훈령에 따라야 하기 때문에 전사자 처리는 어렵지만 그에 걸맞은 처우를 하겠다”고 답했다. 국방부와의 만남에서 고 진우찬(21) 상병의 아버지 진유호(51)씨는 “현장을 봤는데 내가 80년대 초 군 복무를 할 때보다 오히려 (GOP 상황이) 더 안 좋아진 것 같다”며 “이게 개선되지 않으면 제2, 제3의 임 병장이 다시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유족들은 A급 관심병사였던 임 병장이 B급으로 조정됐던 정확한 사유와 군이 이후 어떻게 관리를 해 왔는지도 조사를 통해 밝혀 달라고 요구했다.

글=정원엽·윤호진 기자, 고성·강릉=김윤호·최종권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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