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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재미교포 한태경씨|「연변조선자치주」를 가다 본지독점연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조선족자치주」의 동포들은 한국의 「피아니스트」 한동일씨, 여류 「바이얼리니스트」정경화씨를 비롯, 미국에서 활약하는 김「시스터즈」 등 한국소식은 물론 서방세계의 소식을 신기할 만큼 잘 알고 있었다.
해외소식만을 전문적으로 싣는 이른바 「삼고소식」(「타블로이드」판 신문)을 통한 지식이다. 이것도 얼마전까진 당 간부들이나 접할 수 있었지만 등소평 복권 이후 일반에게도 공개되고 있다고 했다.
이 밖의 「뉴스」 매체로는 한글로 된 연변일보, 중국어판 길림일보 등 신문과 장춘에서 1주일에 2회, 약 2시간 정도 연변지역에 중계방영하는 흑백 TV, 연길의 한국어 방송, 길림의 중국어 방송 등이 있다. 그러나 이들이 즐겨 듣는 방송은 KBS의 「자유의 메아리」 방송과 「미국의 소리」(VOA) 방송이다.

<한국발전상 잘 알아>
이들은 특히 한국의 발전상을 자세히 알고있는 듯 했고 미국과의 수교가 임박해서는 미국생활에 상당한 관심을 표시했다.
내가 집을 나와 산보라도 하면 많은 사람들이 쫓아다니며 질문공세를 폈다. 미국이 잘 살고, 과학이 발달했다는 것은 알고있으나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밥도 기계가 짓고 빨래도 기계가 한다는데 사실이냐』
다행히 내가 갖고 갔던 「폴러로이드」 사진기가 모든 대답을 해줬다. 이때까지 「컬러」 사진을 구경 못한 이들에게 천연색사진이 촬영하자마자 만들어져 나오는 광경은 놀라운 것이었다. 그래서 말로만 듣던 미국의 「발전」을 이 사진기가 대변한 셈이었다.

<컬러사진기에 놀라>
미국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컸던지 미·중공수교발표가 있은 작년 12월16일엔 일부러 많은 사람들이 나를 찾아와 축하하기도 했다.
이곳 동포들은 또 북한의 실정을 잘 아는지라 일부 거류민단간부를 제외한 대부분 사람들이 한국을 동경하고 있었고 남북한 국민전체의 자유선거를 통한 남북통일을 원하고 있는 듯 했다.
한때 이른바 김일성 혁명사상을 「테스트」 한다는 「고험」(시험)을 거쳐 북한으로 이왕한 동포들도 있었으나 요즘은 북한과의 서신왕래조차 끊긴 상태라고 했다.
오히려 일본에서 북송된 많은 북송교포들이 「연변자치주」로 탈출해 나오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일본에서 갖고 온 자동차·TV 등을 모두 북한당국에 뺏기고 빈털터리가 돼 다시 일본으로 보내달라고 항의 「데모」를 하기도 했으나 모두 집단농장으로 보내졌고 연변으로 도망쳐 나오다 붙잡힌 사람만도 상당수에 이른다고 이곳 동포들이 알려줬다.
미·중공수교를 전후해서는 영어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져 국민학교에서조차 지금까지의 소련어 대신 영어를 외국어 교육과목으로 채택, 가르치기 시작했으며 이른바 중점학교(일류학교)에서는 영어교육에 중점을 두고있다.

<중국말투의 우리말>
영어사전은 갑자기 가장 귀한 보물이 됐으며 특히 우리동포들은 영한사전을 구해보길 간절하게 원하고 있었다. 동생의 요청으로 가지고 간 두 권의 영한사전은 연길 사람들의 「베스트셀러」가 돼 서로 돌려가며 구경하느라 한차례 소동을 빚기도 했다. 할 수만 있다면 많은 영한사전을 구해 이역동포들에게 대대적으로 보내주고 싶다.
동포들의 일상용어에는 중국어가 상당수 섞이는 등 언어생활의 중국화가 이뤄져 알아듣기 힘든 때도 적지 않았다.
「출근한다」 「퇴근한다」는 말은 아예 없어지고 대신 『「샹발」(상반)한다』 『「샤발」(하반)한다』곤 했고 「컴퓨터」는 「뗀노」(전뇌)라고 중국어로 표현하고 있다.

<닉슨부인은 몇명?>
한가지 재미있는 일은 「닉슨」 전미국대통령이 중공을 방문했을 때 동반한 부인 「페트」 여사를 이곳 신문들이 소개하면서 「퍼스트·레이디」를 「제1부인」이라고 변역, 많은 사람들이 「닉슨」 대통령에게 여러 명의 부인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제1부인이 대통령부인이라는 설명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동포들 뿐 아니라 대학을 나온 중국인들조차 「닉슨」 대통령이 여러부인 중 첫째부인을 데리고 온 것으로 알고 있었다. 내게도 부인이 몇명이냐고 물어왔다.
문화혁명기간 중 몇몇 동포들은 자신의 가족·친척들을 고발해 숙청의 제물이 되게 했는데 이 때문에 뜻있는 노인들이 매우 통탄해 했다고 한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될 수있는 대로 자신과 가까운 사람을 고발해야 「당성」이 높이, 평가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지만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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