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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종이책이 사라진 미래 … 3D영화 보듯 읽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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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무엇으로 읽을 것인가
제이슨 머코스키 지음
김유미 옮김, 흐름출판
360쪽, 1만7000원

15세기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활판 인쇄술은 16세기 들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 독서의 대중화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당시 독자들이 모두 인쇄된 종이책을 환영한 것은 아니었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은 필경사들이 손으로 직접 쓴 책의 자연스러움에 비해 찍어낸 종이책이 너무 기계적이고 인간미가 없다며 멸시했다. 인쇄한 종이책은 사람이 손으로 쓴 책보다 가격이 쌌지만 잘 팔리지 않았다. 인쇄업자들은 글자체에 일부러 결함을 만드는 등의 방법으로 보다 ‘불완전하고 인간적인’ 책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여기서 잠깐.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아닌가. 종이책에 비해 싸고 편리한 전자책(e-book)이 등장한 지 10여 년 가까이 지났지만 아직 많은 독자들이 종이책을 편애한다. “한 권의 책을 손에 들었을 때의 묵직함, 책장을 넘길 때의 사각거림 등 종이책을 읽을 때의 즐거움을 전자책은 줄 수 없다”는 이유다. 하지만 16세기 독자들의 깊은 애정은 시대의 변화를 거스르지 못했다. 손으로 쓴 책은 인류사에서 거의 사라졌다. 저자는 말한다. “지금부터 한 세대 후 평범한 가정에 종이책이 몇 권이나 있을까. 아마 장식용을 제외하고는 한 권도 없을 지 모른다.”

전자책은 이미 미국인들의 일상에 깊이 침투해 있다. 미국 화가 릴라 캐벗 페리의 1913년 그림 ‘수정 점술가(The Crystal Gazer)’에 전자책 단말기 킨들을 합성한 그림. [사진 Mike Licht/flickr]

 책의 원제는 『Burning the Page(페이지 태우기)』다. 세계 최대 인터넷서점 아마존에서 전자책 단말기 ‘킨들(Kindle)’ 개발에 참여했던 저자는 (본인도 아쉽지만) “종이책의 죽음을 알리는 종이 이미 울렸다”고 단언한다. 이미 글로벌 도서 시장에서 전자책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13%에 도달했다. 미국의 경우 2017년이 되면 전자책이 종이책 시장을 추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전자책 단말기 가격은 점차 내려가고, 구글은 전세계의 모든 책을 디지털화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전자책 혁명은 독서와 글쓰기의 규칙을 바꾼다. 저자가 제시하는 독서의 미래상은 흥미롭다. 홀로그래픽(3차원 그림) 기술이 발달하면 독자가 책의 주인공이 돼 줄거리를 가상으로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자책과 소셜 네트워크가 결합하면 작가와 독자, 혹은 같은 책을 읽고 있는 독자들끼리 토론을 하며 책을 읽는 것도 가능해진다. IPTV처럼 매달 일정 사용료를 내고 무제한으로 책을 다운로드 받아 읽을 수 있는 서비스가 도래할 날도 멀지 않았다.

 이렇게 새로운 시대의 독서법을 저자는 ‘리딩 2.0’이라 부른다. 종이책을 기반으로 한 ‘리딩 1.0’이 책을 첫 장부터 끝 장까지 죽 읽어나가는 직선적이고 정적인 경험이었다면, ‘리딩 2.0’의 시대의 책읽기는 무궁무진한 세상을 넘나드는 초대형 어드벤처다. 그 중심에는 ‘단 한 권의 책’이 있다. 모든 전자책들이 하이퍼링크 기술을 이용해 네트워크로 연결된 거대한 책. 이 세계에서는 어떤 책을 읽기 시작하든 본문과 주석, 비평과 댓글을 통해 다른 책으로 이동할 수 있고 영화로, 게임으로 옮겨갔다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 “평생 다 읽을 수 없고, 영원히 끝나지 않는” 이 책은 지금도 기술적으로는 실현 가능하다.

 공상과학 영화 같은 이런 상상을 저자는 미디어의 역사와 전자책 기술의 발전과정을 차곡차곡 되짚으며 설득력 있게 풀어나간다. 문자 문화의 미래를 근심하는 이들이라면 꼭 한번 읽어볼 만 하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전자책으로 인해 “더 많은 이들이 책을 읽고, 독서는 새로운 생명력을 얻게 될 것”이라고 낙관한다. 전자책은 독자를 ‘글 이상의 것’으로 안내하며, 이로 인해 독서는 더 이상 외로운 행위가 아닌 여럿이 소통하며 즐기는 오락으로 변모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영희 기자

책꽂이 대신 디지털 저장소 … 미래의 도서관

전자책 시대가 본격화하면 보관·유지에 많은 비용이 드는 도서관의 종이책 책꽂이는 줄어들 것이다. 대신 도서관들은 전자책을 저장한 드라이브를 확충하게 될 것이다. 사서는 고객에게 어떤 전자책을 읽어야 할지, 또는 어떤 전자 백과사전과 리소스를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 온라인으로 조언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전자책이라고 해서 모든 사용자가 동시에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도서관은 일정 비용을 내고 일정 수량의 디지털 카피만을 구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여자가 책을 연체할 경우 연체요금을 내거나, 반납기간이 되면 전자책이 저절로 꺼져 반납되는 방식이 정착될 것이다.

 전자책 융성은 도서관의 지속에 일종의 위협이다. 하지만 도서관이 해야 하는 중요한 기능이 있다. 만약 구글이나 애플 같은 회사가 파산해 자신들이 가진 모든 전자책을 소멸시키려 할 경우, 도서관은 전자책 콘텐트를 계속 유지함으로서 책의 재난과 종말을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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