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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산」신선호 사장 납치 기도…범인 한명 자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율산실업 사장 신선호씨(33·서울 강남구 논현동 18의7)가 25일 하오 2시30분쯤 경제기획원 정문 앞에서 모 고위기관원을 사칭한 20대 괴한 3명에게 승용차로 납치 당했다가 55분만인 이날 하오 3시25분 경부 고속도로 양재동 「톨게이트」에서 극적으로 탈출했다.
일당 3명 중 범행 당시 차를 몰았던 윤영자씨(33·서울 도봉구 미아동 거주·개인「택시」 운전사)가 26일 상오 11시50분 치안본부에 자수. 『이번 사건의 주범은 육촌동생인 윤영철(27)과 그의 친구이며 나는 동생의 꾐에 속아 차를 운전해 주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윤씨의 말에 따라 윤과 공범 1명을 뒤쫓는 한편 시외로 빠지는 도주로를 차단했다. 자수한 윤씨는 경찰조사에서 『25일 비번이어서 집에서 쉬고 있는데 하오 2시쯤 이웃에 사는 육촌동생이 찾아와 사업관계로 경기도 여주에 갈 일이 있으니 같이 가자고 해 따라 나섰다』고 말했다.
윤씨는 동생과 함께 「택시」를 타고 경제기획원 앞에 도착, 신 사장을 만나 차를 운전하게 됐으며 동생이 시키는 대로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경부 고속도로 「톨케이트」까지 갔다고 말했다.
윤씨는 시내를 돌아다닐 때까지도 납치범행인 줄 눈치채지 못했으나 신 사장과 동생이 옥신각신하는 것을 듣고서야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으나 상대가 누구였는지, 어떤 내용의 범행인지를 전혀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범행에 실패하고 차를 버린 뒤 뿔뿔이 헤어져 집에 돌아온 윤씨는 고민하다가 아침 「뉴스」를 듣고 자신이 엄청난 범행에 가담한 것을 알고 경찰에 자수하기로 결심, 자신이 얼마 전까지 치안본부 간부의 친구인 N모 사장의 차를 몰았으므로 N씨에게 이 사실을 자백, 경찰에 출두했다고 말했다.
윤씨 형제는 경북 울진이 고향으로 10여년 전 상경, 윤씨는 운전사로 일해왔으나 동생 윤은 일정한 직업 없이 형을 가끔 찾아 용돈을 타 가는 등 괴롭혀 왔다고 말했다.

<피납>
범인들은 상오 9시·9시30분, 하오1시 등 세 차례에 걸쳐 『고위층의 비서인데 신 사장을 좀 만나자』고 전화를 해 비서실 과장 김호경씨가 신 사장이 없다고 말하자 『집 전화번호라도 가르쳐 달라』고 말했다.
범인들은 하오 1시30분쯤 전화를 다시 걸어와 마침 신 사장이 직접 전화를 받자 『모 기관의 고위간부 비서다. 할말이 있으니 경제기획원 정문 앞으로 하오 2시30분 정각까지 나오라』고 말하고 『그 곳에 오면 우리의 안내원을 보내겠다』고 말했다.
신 사장은 하오 2시30분쯤 서울2나9477호 흑색 「마크W」 승용차를 타고 율산실업 기획조정실장 주치호씨(39)·운전사 구현수씨(28)와 함께 경제기획원 정문 앞에 도착했다. 5분쯤 기다렸을 때 회색 「바바리·코트」를 입은 청년 2명이 다가와 『신 사장입니까』고 물어 『그렇다』고 하자 기획조정실장 주씨를 먼저 내리게 한 뒤 이어 『우리가 직접 모시겠다』며 운전사 구씨도 내리게 하고 회색 신사복의 범인이 차를 운전해 경제기획원 앞을 떠났다.
범인들은 신 사장을 태우고 치안본부→팔판동 삼거리→삼청공원 입구에 이르러 대기하고 있던 노란색 「점퍼」 차림의 제3의 범인을 태웠다. 신 사장이 뒷자리의 한가운데에 앉았다가 삼청「터널」을 지날 때 당초 그들이 말했던 모 기관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을 이상히 여겨 『방향이 다르지 않느냐』고 묻자 범인들은 대답을 하지 않고 그냥 차를 몰았다.
차는 성북동→혜화동 「로터리」→옛 서울대→동대문→「타워·호텔」→제3 한강교를 지나 양재동 고속도로 「톨게이트」까지 갔다.

<탈출>
자신이 납치되고 있다는 것을 직감한 신 사장은 차가 제3 한강교를 지날 때부터 몸을 뒤틀며 탈출을 시도했다.
신 사장의 양쪽에 앉아있던 범인들이 신 사장의 양팔에 깍지를 껴 죄며 『돈을 가지고 있느냐』고 물어 『없다』고 하자 『모 재벌의 회장을 택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아 신 사장을 모시기로 했다』고 협박하기 시작했다.
차가 「톨게이트」에 이르렀을 때 신 사장이 뒷좌석에서 고함을 치며 몸부림치자 이상히 여긴 매표원들이 다가가자 범인들은 차를 후진시켜 50m쯤 떨어진 사무실 쪽으로 들렸다.
이 때 「톨게이트」 직원 2명이 달려가 문을 열려고 하자 범인들은 신 사장의 팔을 놓았고 그 순간 신 사장은 『납치 당했다』고 고함을 치며 차문을 박차고 뛰쳐나가 사무실로 피신했다.
신 사장은 곧장 고속도로 순찰대에 사건을 신고하고 율산실업에 전화로 연락, 회사 간부들이 급히 몰고 온 승용차로 자택에 무사히 귀가했다.
신 사장은 외상은 전혀 없었으나 공포에 질린듯 입술이 새파랗게 변했고 얼굴은 백지장 같이 하얗게 변했었다고 당시 신 사장을 지켜본 사원들이 말했다.

<범인 도주>
신 사장이 탈출하자 범인들은 매표원들의 제지를 뿌리치고 「톨게이트」를 그대로 지나 시속 1백20km로 수원 쪽으로 달아나다 7km쯤 떨어진 도로공사 본사에 들러 4백 원을 주고 서울 가는 표를 구입, 차를 돌려 다시 「톨게이트」를 유유히 빠져나가 서울 강남구 서초동 73의4 홍릉 갈비집 맞은편 차도에 차를 버리고 달아났다.
범인들이 버린 차는 이날 하오 7시55분쯤 시경강력계 형사 「팀」에 의해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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