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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폼페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재(회)없는 폼페이』, 『페허(폐허)없는 히로시마』.
요즘「프놈펜」을 방문했던 미국의 한 신문기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폼페이」나「히로시마」는 인유역사상 가장 처참했던「죽음의 도시」들이다.
「캄보디아」는 적화4년만에 처음으로 미국기자 2명과 영국의 한 학자에게「프놈펜」과 지방도시들을 공개했었다. 영빈관에 묵고 있던 이들가운데 영국교수는 한밤중에 느닷없이 총격을 받고 암살되었다.
「캄보디아」외무성의 한 관리는「베트남」의 앞잡이들이 저지른 일이라고 말했다. 그 진상은 어찌되었든「폭도」가 영빈관을 활보할 수 있는 상황은 뜻밖이었다. 「캄보디아」의「폴·포트」정권은20세기 최악의 폭정을 폈다고 세계의「매스컴」들은 입을 모아 비난한다. 그러나 이들의 심장을 파고 드는 반란세력에는 끝내 무력했다. 어이없이 손을 들고 만 것이다.
-『「캄보디아」는 비극과 공포의 나라가 되고 말았다. 이대로 계속된다면 세계의 지도에서 사라지고 말 것이다. 가축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주민들의 마음속엔 증오심, 그것 뿐이다. 무기만 가질 수 있다면‥.』
최근 미국·영국·「캐나다」3국정부의 조사보고서에 기록된「처절한 증언」의 한 대목이다.
「캄보디아」의 주민들은 이 보고서에 따르면 누구나「사하코」라는 생산공동체에 묶여있다. 이공동체의 규모는 1천명에서 3, 4백명으로 조직되어 있다. 도시민들도 전원이 지방으로 쫓겨나 이「사하코」의 일원이 되어「원시농경공동체」와 같은 생활을 해야했다.
아침 5시부터 11시까지 노동.1시간,때로는 1시간반동안.오후1시반부터 5시까지 다시 노동. 저넉 식사후 밤9시까지 또다시 노동. 휴일은 10일에 하루.
15세이상 45세까지의 독신남자는 제방공사에, 14세이하는 공동체주변의 하천공사에, 나머지 기혼자들은 벼농사에.
이들은「푸크」라는 3명내지 5명의 소조에 묶여 모든 노동에는 연대책임을 져야했다. 또한 이들은 1백m 떨어져있는 부모를 방문하는 일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앙카」라고부르는공산당원이 이들의 조직속에 배치되어 그런일들을 감시한다.
필경 반란세력은 그들의 조직적인 무력이나「베트남」의 지원보다는 내부주민의 이글거리는 증오심에 힘입어 불과 2주만에 전정권을 무너뜨릴수 있었던것 같다.
새정권을 선언한「헹·삼린」은 아직「베일」속의 인물.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역시 공산주의자의 일원이라는 점이다.「캄보디아」의 어두움이 언제 걷힐지 아직은 누구도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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