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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서투른 외래어 추방하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대학입시에 「패스」한 대학생이 「유니폼」에 「배지」를 달고 대학「마크」가 선명한 「스쿨·버스」로 「캠퍼스」에 갔더니 「채펄」을 겸한 입학식에 이어 「오리엔테이션」이 있었다.
종강「리셉션」에서 「코피」 한 잔 마신 뒤 「셀프·서비스」의 점심을 「오므라이스」로 먹고 많은「엘리트」들이 모인 가운데 「매머드」강당에서 「심포지엄」이 있었는데 그 「테마」는 민족주체성의 확립방안이었다』-.
이 글은 우리말다듬기회 간사인 이경복씨(서울교육원 장학사)가 외국어 홍수를 이루고 있는 오늘의 실태를 풍자한 것이다.
지난해 5월 서울시내 A고등학교에서 열린 우리말 지켜쓰기 대회장. 격려사를 하기 위해 나선 장학사 P씨는 『여러분이 이 「캠퍼스」의 「이니셔티브」를 쥐고 우리말을 보호하는 「캠페인」을 전개해야 한다』고 말해 학생들의 웃음을 샀다.
서울중구저동 S식품가게에 진열된 3백여종의 일용품 중 절반이상이 외국어로 이름지어져 있다. 어린이들의 파자는 「죠리」「퐁퐁」「쟝가」「찡가」등 외국어를 흉내내 이해할 수도 없는 이름투성이다.
양화업종의 경우 「에스콰이어」「엘칸토」「캐리부룩」「비제바노」「샤바또」「사루비아」등 외래어 상호가 대부분. 이들 업소가 만든 구두이름은 「사이드·액션·부츠」「루스·핏·부츠·큐」「디스코·묵·부츠」「와이드·빅·앤드·스트랩·부츠」등 쉽게 알 수도 없는 것도 있다.
이래서 서울에 있는 일본무역상사주재원 「가마모또」씨(40)는 서울거리의 간판을 보고 이곳이「홍콩」이나 미국 도시인 것처럼 착각하게 될 때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말은 광복33년이 지났는데도 일본말 찌꺼기와 어려운 한자 투성이인 데다가 일상 생활용어에서부터 전문어에 이르기까지 온통 외래어로 범벅이 됐다.
일상용어 이외에 대학가와 전문가들의 용어에도 외국어가 많다.
대학생들의 여름봉사활동이나 간부수련대회를 「리더십·워크숍」이라고 쓰고 있을 정도.
이 같은 외래어남용은 외국것을 무조건 숭상하는 문화적인 사대주의 때문이라고 한글학회이사장 허웅 박사는 지적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외래어 홍수로부터 우리 글과 말을 지키려는 움직임이 사회각계각층에서 일고 있다.
한글전용국민실천회·한글문학협회·국어순화촉진회·우리말다듬기회·한글이름펴기모임 등 민간단체들이 등장, 문교부에 한글전용정책을 촉구하며 우리말 정화운동을 펴고 있다. 이들 단체들은 77년말 체신청이 전화번호부를 한문원칙으로 작성키로 한데 반발, 행정소송을 제기하면서 까지 투쟁을 벌여 한글원칙으로 작성케하는 데 성공했다.
서울대국어운동학생회는 68년부터 매년 고운 이름 자랑하기 대회를 열어 우리말로 이름짓기 운동을 펴오고 있으며 세종대학 등 10여개 대학생들은 국어운동학생회를 만들어 일상생활에서의 우리말쓰기운동을 펴고있다.
이 같은 민간단체와 학생들의 국어순화운동에 발맞춰 정부당국도 76년부터 과자 등 식품류의 상표와 「아파트」이름·간판 등에 외국어사용을 규제하고 각급 학원·학교이름을 우리말로 쓰도록 권고하는 등 행정력을 통해 우리말 쓰기를 추진하고 있다.
한국방송윤리위원회도 76년 시민들의 언어생활에 큰 영향을 주는 방송용어에서 외국어를 추방하기 위해 야구 등 5개 종목 운동경기용어 중 5백23가지의 외국어용어를 우리말로 바꿔 통일해(예=「코너·킥」을 「모서리차기」로) 쓰기로 했다.
우리말 다듬기회의 이씨는 경제계획·국토개발계획·가족계획이 국민의 물질적 삶을 위한 노력이라면 『국어순화운동은 국민의 정신적 삶을 위한 노력』이라며 정부가 경제개발과 같은 차원에서 장기적인 국어순화계획을 추진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박애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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