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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2412>|<제61화>극단「신협」<49>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두서없이나마 「신협」의 이야기를 일단 끝맺게 됐다.
그러나 이야기란 생명이 다 하는 동안 끝날리가 없는 것. 더군다나 극단 「신협」은 지금까지 활동이 계속되고 있으니 그 뒤에 다른 이야기가 또 없을리 없다.
그런데 많은 이야기중에 이 연극 이야기만은 아무리 잘 묘사한다 하더라도 그때 관객과 함께 연극을 하던 그 순간의 분위기·갈채·감동·격정을 되살릴수는 없다. 그래서 연극을 「순간의 예술」「현장예술」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가 쓴 지금까지의 회고도 그야말로 한낱의「에피소드」. 인상에 남았던 이야기의 단편만을 기록하는데 불과했다.
지난날을 되돌아보아도 연극을 해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설혹 인생을 다시 산다 하더라도 여전히 연극만을 할 것이다.
인생을 다양히 살지는 못했지만 이것저것 몇가지 경험한 뒤에로 연극은 역시 네가 설땅이란 것을 느낄수 있었고, 앞으로 길지 않은 인생의 나머지도 역시 연극에서 사는 것이 행복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연극은 나의 결점을 보충해 주었고 수정해서 나를 크게(대)해준 인생의 교실이었다. 그뿐 아니라 인생의 또 한면을 배우게 했고 깨닫게 했고, 그리고 일찍이 맛볼수 없었던 무한한 즐거움을 안겨준 신비의 세계였다.
그 사이에 잠깐씩 다른 동네(국회·예총회장)에 나들이도 해봤지만, 역시 내가 안주할 수 있는 동네는 연극뿐이구나 하고 생각됐었다.
어떤 노배우가. 배우는 세월이 흘러가는 것과 함께 나이를 먹고 늙어가는데 관객은 예나 지금이나 20대의 청춘으로 머물러 있다며 슬픈 표정의 장탄식을 하는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사람이 늙어간다는 것은 자연의 당연한 섭리. 그리고 예술은 새로운 사람들로 인해 더욱 찬란하고 아름답게 이어지는 것이다.
관객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현재 우리 연극의 가장 아쉬운 것이 관객의 층이 두텁지 않다는 점이다. 온통 젊은이들 일색으로 그것이 또 무대에 그대로 반영되어 연극을 창조하는 연극인들도 모두 젊은 세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희망적이고 앞날을 위해 좋은 현상이라고도 볼수 있지만, 연극이 인생을 음미하는 것이라면 그 인생의 깊은 곳에서 들려 나오는 소리를 맛볼 수 없다는 아쉬움을 주고 있다.
연극이란 인간의 정서에 가장 강하게 영향을 줄수 있는 예술의 하나다.
좋은 연극은 인생을 풍부하게 해주고 갈등에 빠진 인간의 마음을 순화시켜주는 좋은 도구가 된다.
극장에서 연극을 구경하는 동안은 연극의 정서에 흠뻑 젖어야 하고 예술적인 중량과 극적인 분위기가 극장안을 가득 메워야 하는데, 그것이 최근의 연극에서 조금 미흡한 감이 있다.
얇은 관객층과 함께 연기자들의 폭이 넓지 못하다는 것도 우리연극계가 당면한 과제중의 하나다.
여석기 같은이가 몇해에 걸쳐 극작「워크숍」을 열어 많은 유능한 극작가들을 배출시켰는데 이같이 연기자를 위한 「워크숍」을 열어 무게 있는 연기자들을 배출해 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새로운 것을 요구하는 젊은이들의 취향에 따라 요즘의 연극은 호소력을 잃고 있는 듯하다. 옛날엔 연기로써 큰 감동을 주는 명배우의 연기를 볼 수가 있었는데 요즘은 이런 연극을 구경하기가 힘들다. 연극인들이 유행에 뒤좇아가지 말고 관람객들이 좋은 연극에 몰려들 수 있도록 관객을 유도해 가야 할 것이다.
역시 연극의 주체는 배우니까 역량있는 배우를 키우는데 연극계는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그동안 연극을 하면서 잊을 수 없는 이들이 많다. 모두 연극을 사랑한 이들로서 음으로 양으로 「신협」을 도와 우리의 연극을 지탱케 했다.
그 가운데 한국일보 사주였던 고장기영씨와 전남일보 김남중씨 같은 이도 그 중의 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각각 서울과 지방에서 「신협」을 도운 이들로, 어려운 시기에 연극이 쓰러지지 않게 각별한 배려를 해준 사람들이다. 다 고마운 분들이다.
연재중 가까운 이들의 격려와 조언에도 지면을 통해 감사드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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