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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미국견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미국무성의 미국내 「스케줄」은 대부분 관광여행으로 짜여져 있었다. 그러나 나는 연극만 보겠다고 거의 「뉴욕」에 머물러 연극구경만 했었다. 그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이「브로드웨이」의 「액터즈·스튜디오」였었다.
「엘리어·카잔」이 「리더」로 있었던「액터즈·스튜디오」는 일종의 연기인 수련장으로 당시 미국내 쟁쟁한 연예인들이 모두 몰려 연기수업을 하고있었다. 그 가운데는「마릴린·먼로」「제임스·딘」「앤터니·퀸」「말론·브랜도」「폴·뉴먼」, 그리고 흑인가수「해리·벨러폰레」까지 참가하고 있었다.
그들은 1주일에 2번씩 나와 공부하고 있었는데 이론과 함께 실기를 공부했다.
실기의 경우 어떤 연극의 한 장면을 동료앞에서 연기하면 동료들이 그 연기에 대한 비판과 토론을 하곤 했다.
그 과정이 참으로 진지하고 열성적이라 나는 큰 감명을 받았다. 연기자란 저런 수련을 쌓아야만 비로소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연기를 할 수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내가 보았던 「액더즈·스튜디오」의 배우들은 당시 미국을 대표할만한 1급 배우들인데도 틈을 내어 연기수련을 계속했던 것이다.
하루는 국무성관리에게 「엘리어·카잔」이 연출하는 모습을 볼수 없겠느냐고 부탁했다. 그러나 관리를 통한 회신은 불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당신이 연출할때 남이 구경하게 합니까』하고 되묻더라는 것이다.
사실 연출이란 연출자와 연기자와의 미묘한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하는데 누군가가 한사람이라도 외래객이 있으면 배우는 그 사람을 하나의 관객으로 간주, 연기자는 연출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미묘한 분위기가 깨어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카잔」의 대답은 당연했다. 그대신 「카잔」은 한국의 연극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싶으니 한번 만나자는 것이었다.
「카잔」은 아주 반갑게 맞아주었으며 연극에 대한 여러 가지 얘기를 진지하게 들려주었다. 나중에 「카잔」은 한국의 연극 한토막을 보여줄 수 없겠느냐고 해서 나는 좋다고 허락, 『춘향부』에서 변학도가 춘향을 구슬리는 대목을 연기해 보였다. 연기가 끝나자 「카잔」은 한국어가 대단히 시적이며 아름답고 「리듬」감이 있다고 격찬했다. 또 한국관객들은 어떤 연극을 즐기느냐고 질문, 나는 주로 비극을 좋아하는 편이라고 했더니 「카잔」은 『그점은 우리와 다르군요. 미국관객들은 「코미디」물을 즐기지요』하고 이상히 여겼다.
아무튼 3개월 동안 미국에 머무르는 동안 미국서 공연되는 연극은 거의 빠짐없이 구경했다.
그것은 뒤에 나의 연극활동에 큰 도움이 됐었다. 당시 국무성의 비용은 넉넉한 편이었다. 그래서 출국때 집에서 마련해간 용돈은 그대로 고스란히 남았다. 나는 귀국길에 「유럽」을 들러 「유럽」 연극계를 돌아볼 계획이었다.
그러나 나는 미국서 아주 희한한 것을 구경하게 됐다. 바로 연극의 효과만을 수록한 전집 「디스크」였다. 그「디스크」엔 아기울음소리부터 귀뚜라미소리·군중소리·기적소리등 소리란 소리는 모두 수록된 아주 훌륭한 효과「디스크」였다. 우리나라에선 연극효과를 내려면 철판을 두드려야하는 수공업적 작업이었는데 이것을 보니까 눈이 번쩍 띄었다.
나는 「유럽」여행을 취소하고 그 비용으로 이「디스크」전집을 샀다. 부피가 꽤 나간 많은 양이었다.
이 효과 「디스크」를 사용해 공연한 첫 연극이 5년 5월에 공연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였다.
「데네시·월리엄즈」원작의 이 연극은 대성황을 이루었는데 거기엔 몇가지 이유가 있었다.
즉 번역극이긴 하지만, 오랜만에 공연한 신작이었는데도 나의 귀국출연작품이란 선전, 그리고 미국에서 갖고온 생생한 음향효과가 연극성공의 결정적 작용을 했던 것이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미국에서도 그즈음 초연되었을뿐 아니라 「테네시·월리엄즈」란 작가가 한국에 소개되기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따라서 처음 접한 미국의 신작은 해외문화에 굶주렸던 문화인들에겐 큰 선물이 됐다.
또 내가 출국할때「매스컴」에서 크게 떠들었는데다가 귀국해 무대에 선다는 것이 또한 「뉴스」가 되어 큰 선전효과를 얻었다.
여기에다가 실감있는 효과가 곁들였으니 관객들은 오랜만에 연극에 매혹될수 있었다.
극장안을 쩡쩡울리던 기차달리는 소리와 기적소리, 그리고 군중소리와 흑인연가등은 관객들을 현실의 소리로 착각할만큼 생생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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