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모의 이웃돕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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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세모-.
온갖 아귀다툼과 승부와 짜증이 뒤범벅된 또 한해가 저물면서 거리엔 어느덧 자선냄비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사람들은 공연히 들뜨거나 울적해져서 길거리를 헤맨다. 초조 때문이기도 하고 흥분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다가오는 명절과 열 악의 계절을 준비하는 즐거움 또한 클 것이다.
상점가와 「쇼핑·센터」는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상품의 홍수로 술렁거린다.
무언가 야릇한 긴장과 수선스러움이 뒤덮인 계절이다.
이 무렵이면 으레 사고와 자살과 탈선, 사치와 허영과 소비가 춤추는 계절이기도 하다.
물가가 비싸다 비싸다 하면서도 돈이 어디서 그렇게 생기는지 시장과 술집과 양품점엔 풍성한 고액권들이 눈부시게 거래된다.
작금 사정이 아무리 여의치 않아도 선물 보낼 만한 곳은 그냥 지나칠 순 없고, 여유가 아무리 없어도 체면치레만은 안 할 수가 없다.
이래서 세모는 쓸데없는 낭비와 허례허식이 만을 치는 계절이다.
그러나 이 풍성한 양지 저편 구석에는 세모의 흥청거림을 딴 세상풍경처럼 바라보는 소외지대가 있다.
불치의 질병과 불구로 신음하는 병상의 형제들, 혈육의 정이 끊어진 사고무친의 할머니 할아버지들, 엄마 아빠의 정겨운 선물 한 번 받아 보지 못하는「집 없는 천사」들, 시립 부녀 보호 소에서 우 울과 체념을 씹고 사는 멍든 여성들, 따지기 시작한다면 하나 둘이 아닐 것이다.
이들은 남의 나라 사람도, 지구 밖의 화성 사람도, 낙인찍힌 이단자도 아닌, 바로 우리자신의 형제들이다.
이들의 외로움과 소외와 우 울이 있는 한 우리의 명절이나 세모는 결코 즐거울 수도 없고 즐거워서도 안 된다.
그들이 슬퍼하고 절망하는 사이 우리만이 즐거워하고 흥청거린다는 것은 비도덕적일 뿐 아니라 자기 모욕적이다.
차라리 내가 물건 한 개를 덜 사고 술 한잔을 덜 마시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을 위해 돈 한푼을 더 쓰는 편이 나 자신을 위해 얼마나 기쁜 일이겠는가.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그들의 마음을 조금쯤 더 위로해 주는 것 뿐 아니라 우리 자신도 도덕적으로 구원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돕는 자와 도움을 받는 자 사이의 관계는 결코 일방적인 시혜와 수혜의 관계만은 아니다.
도움을 받는 자는 도움을 주는 자를 도덕적인 불 완전성으로부터 구원해 준다. 이 점에서 거리의 자선냄비 종소리는 바로 우리와 나 「자신」을 위해 우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온갖 탐욕과 승부 철학, 남을 질시하고 중상하고 미워하고 의심하는 일상의 망념을 떨어버리고 한 때나마 차분한 본원으로 돌아가 보자.
그 본원에는 이웃과 형제를 사랑하고 싶어하는 인간 본연의 간절한 목마름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거리의 저 종소리는 바로 그 본원에의 회귀를 위해 울리는 것이기에-.
이 목마름이 메마르지 않고 외로운 이웃의 고통받는 형제들에게 사랑이 파급될 때 우리의 세모는 보람있는 계절로 보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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