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귀신같이 살아버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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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제37기 왕위전 본선리그 제1국
[제6보 (93~106)]
白·李世乭 6단 | 黑·朴正祥 3단

돌을 살리기 위해선 돌의 결이라 할까, 생명의 형태에 대해 즉각적으로 감이 와야 한다. 만약 생사에 대해 자신이 없으면 모든 작전은 애당초 계획단계에서부터 수정이 불가피하다.

이창호9단과 조훈현9단, 그리고 이세돌6단. 이 세 사람은 모두 타개의 귀신이다.

이세돌은 공격에도 능해 이창호의 대마를 여러번 잡아 세상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승률은 실리바둑, 즉 타개 쪽이 더 높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이세돌6단은 백△로부터 삶의 길을 찾아 나섰다. 朴3단은 이를 악물고 93으로 이어준다.

돌은 건드리면 강해지는 속성이 있으니까 비빌 언덕을 주지 않으려면 이 수가 옳다.

집으로 추격하려 한다면 '참고도1'의 흑1로 막는 것이 낫겠지만 지금은 비상시국이어서 흑은 이 백을 꼭 요절내야만 한다. 잡아버리거나 최소한 중상을 입혀야 한다.

李6단이 94로 쓱 보폭을 넓혔을 때 박3단이 95로 옆구리를 치받았는데 이 둔탁한 한 수가 최강의 한 수였고 가슴 뜨끔한 급소였다. 느긋하던 李6단도 바짝 긴장하며 장고에 잠긴다.

96은 불가피한 후퇴. 기세 좋게 뻗었다가는 흑96 한방으로 연락이 두절된다.

그러나 백 대마는 97로 포위됐고 이제 백엔 과연 어떤 삶의 방략이 있을까. 두 젊은이의 생사를 건 공방전이 불을 뿜고 있다.

숨막힐 듯 고요한 대국장, 그때 백98의 한칸 뜀이 등장했다.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부드럽게 중심을 잡은 이 한 수가 등장하자 검토실에선 아! 하는 탄성이 나지막하게 터져나온다. 朴3단의 얼굴도 붉게 달아오른다.

놀랍게도 흑의 야망은 이 한 수로 꺾였다. '참고도2'의 흑1로 공격해도 백4, 6의 맥점으로 산다.

그래서 99로 공격했으나 100, 102를 선수한 다음 104로 붙인 수가 또한 절묘한 삶의 수단이 되고 있다.

106이 떨어지자 朴3단은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다음 수를 찾지 못하고 있다. 朴3단의 공격과 李6단의 타개가 치열하게 맞섰지만 결국 '타개'가 아슬아슬하게 승리하고 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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