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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현금영수증 발급 안 된다면서 현금만 내라는 불국사·석굴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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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송의호
사회부문 기자

관람료는 현금만 받고 현금영수증도 발급하지 않는다. 관람객들의 불만이 수없이 제기됐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경주 불국사·석굴암 얘기다.

 인천에 사는 이모(60)씨 부부는 최근 경주로 여행을 갔다. 지난해 공직에서 정년 퇴임한 이씨는 수십 년 전에 가 본 불국사와 석굴암을 둘러보기로 했다. 세계문화유산이어서 과거와는 느낌이 다를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석굴암 매표소에서부터 기분이 상했다. 이씨는 입장료(성인 기준 4000원)를 내기 위해 신용카드를 제시했다. 매표소 직원은 “현금만 받는다”고 했다. 그래서 “현금영수증이라도 발급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현금영수증 발급을 안 하는 게 관행”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인근 불국사도 마찬가지였다.

 이씨는 경주시청에 전화해 따졌다. 경주시청 담당자는 “관광객의 불만이 쏟아지지만 해결방안이 없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비영리 종교시설은 신용카드를 받지 않아도 제재할 수단이 없다.

 불국사와 석굴암은 연간 1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국내 대표 관광지다. 경주시에 따르면 이곳 입장료 수입만 연간 60억원에 이른다. 경주를 찾는 외국인은 대부분 이곳을 찾지만 이들 역시 현금을 내야 한다. 한국 돈을 준비하지 못한 외국인은 발길을 돌리기 일쑤다. 반면 분황사·기림사 등 경주 지역 다른 사찰은 신용카드로 입장료를 받는다. 경주시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도 ‘현금징수’ 문제를 지적하는 글이 수없이 올라온다. “현찰로만 받고 기록 하나 남지 않는 이 막대한 수입을 이들은 과연 어떤 곳에 쓰고 있을까” 등이다.

 경주시는 불국사에 여러 차례 시정을 요구했다고 한다. 불국사 측은 “입장료 징수 문제는 조계종이 직접 관할하고 있어 맘대로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해인사·송광사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불국사 측은 “입장료를 받아 말사(末寺) 식구들을 먹여 살리고 각종 성금을 내는 데 쓴다”며 “입장료 카드 결제는 조계종과 협의해 내년께 시행을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세계적인 관광지 경주의 후진적인 관행이 언제 개선될지 지켜볼 일이다.

송의호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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