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쿨베리의 '백조의 호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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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다!"

스웨덴 쿨베리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3~5일 LG아트센터)를 본 뒤 극장을 나오는 관객들은 박수로 뜨거워진 손바닥을 비벼대며 이렇게 말했다.

근엄한 발레를, 그것도 슬픈 사랑을 다룬 '백조의 호수'를 보고 재밌다? 그렇다. 독창적인 안무가인 마츠 에크가 원작에 '장난을 친'(또는 새롭게 재해석한) 이 '버전업된 백조의 호수'는 한편의 재기발랄한 영화를 보는 것처럼 쉽고, 즐겁고, 상큼했다.

지그프리트 왕자는 성인이 된 후에도 어머니의 치마폭에 싸여 노는 마마보이다. 어머니의 부정을 보고 방황하는 왕자에게 어느날 오데트 공주가 홀연히 나타난다.

공주는 연약하고 신비로운 기존의 이미지와 달리 영화 속 '엽기적인 그녀'처럼 터프하고 솔직하다. 공주는 왕자를 강하게 단련시킨다.

'백조의 호수'는 연극적인 요소가 강하게 배어나온다. 무용수들은 춤으로 감정표현을 하는 대신 뒤뚱거리고 소리지르고 깔깔깔 웃으면서 인간의 감정을 보다 구체적이고 직관적으로 표현한다. 팸플릿의 구체적인 설명 없이도 작품을 즐길 수 있을 정도다.

작품 곳곳에 관객의 웃음을 유발하는 장치들이 가득하다. 코를 고는 왕자, 종이봉지를 '펑!'하고 터뜨려 최면을 거는 마법사, 갖은 폼을 잡으며 남자를 유혹하는 여자의 모습은 기발하면서도 재미있다. 왕자를 따라다니는 하인 세명의 장난기 어린 앙상블은 관객의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다.

무대엔 호수와 궁전이 보이지 않는다. 단조로운 무대를 지키는 건 '똥' 그림이다.

세상을 '싯(shit)'이라고 생각하는 왕자의 내면 세계를 표현했다는데, 왕자뿐만 아니라 왕자의 어머니도, 하인들도, 궁정 식구들도 이 똥에 기대고 똥을 껴안고 서성이며 불안한 내면심리를 표출한다.

'똥'은 결국 왕자가 자신을 찾는다며 여행을 떠나는 순간 무대에서 유유히 사라진다. 재치있는 설정이다.

이렇듯 주제.의상.무대 등이 고전과 완전히 차별화됐지만 단 한가지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은 변하지 않아 작품의 낯섦을 상쇄한다.

후반부에 왕자가 자신을 성찰하는 과정, 백조(오데트)와 흑조(오딜)가 결국 동일인물이었음을 암시하는 대목에서 개연성이 떨어진 점은 다소 아쉬운 대목이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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