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2330)|함춘원시절(제59화)|업적남긴 사람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해방후 줄곧 지금까지 함춘원에 진정한 의미의「아카데미시즘」과「히포크라테스」의 숭고한 정신을 뿌리내리게한 공로자는 숱하게 많다. 지면관계상 그들의 업적을 일일이 기록할 기회가 없어 안타까운 마음이다.
그러나 아무리 사정이 허락치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제구·한심석·김홍기 박사와 진병호·심상황박사에 대해서는 잠깐씩이나마 언급해야겠다.
l931년 경성제대 예과에 입학해서 1976년 정년퇴직으로 서울대의대 교수직을 사임하기까지 45년간 함춘원에서 산 이제구박사는 오늘날 서울대외과대학이 있게한 공로자중의 한사람이다.
30세 약관으로 경성여의전의 정교수로 취임해서(40년)당시 장안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37년 경성제대 의학부를 졸업하고 「고스기」(소삼) 병리학교실에서 수련한 이박사는 병리학자로서도 유명하다.
뿐만 아니다. 그는 대학행정가로서도 정평이 나있다.
51년부터 55년까지, 그리고 64년부터·68년까지. 두번이나 서울대의대 학장직을 역임하면서 그가 이룩한 업적에 대해 함춘원 출신은 모두 경의를 표하고 있다.
이박사를 생각하면서 특히 기억나는 일은 46년·국대안에 따른 성대와 경의전의 통합작업이 순탄치 못해 학생교육이 제대로되지 않고 있을때 전문부 졸업장을 받은뒤 예과에 해당되는 2년간의 교육을 더 받으면 다시 학부졸업장을 주도록 하자고 이박사가 제의, 사태를 수습하고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했던 점이다.
경성대학 의학부병리학 교수(45년), 서울의대 교수겸 교무과장(46년), 학술원회원(54년), 병리학회장(60∼70년) 서울대의대 암연구소장(72년)을 지냈고 정년 퇴직후 경희대 동서의학연구소에서의 있는 연구에 말년을 보내고있다.
큰아들 이상력군도 함춘원출신(64년 서울의대졸)으로 산부인과 의사다. 2남 이상건군은 고려대의대를 졸업하고 현재 미국에서 활약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함춘원 출신중 학자로서 최대의 영광을 누린 이를 꼽으라면 누구나 서슴지않고 한심석박사라고할 것이다.
일제때(38년) 경성제대의학부 전임강사가 될 수 있었던 한박사는 서울의대교수(45년 이후), 서울의대 부속병원장(68년), 서울대의대학장(70년), 서울대부총장(70년)을 거쳐 70년11월부터 75년까지 서울대학교 총장까지 지낸것이다.
함춘원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병원협회장·내료학회장·소화기병학회장·국제간연구회한국지부장등 경력도 화려한데 그는 교육자나 대학행정가로서 뿐만 아니라 내과의사로서도 명성을 떨친바있다.
36육군 병원시절 나와 더불어 고락을 같이 했던 김홍기박사는 떨치고 서울대학병원사에 길이 빛날 업적을 쌓았는데 오는 10월15일 서울대학교 개교 기념일을 맞아 역사적인 개원의 「테이프」를 끊을 「특수법인 서울대학교병원」의 산파역으로서 그가 수행한 임무는 아무리 칭찬을 받아도 부족할 것이다.
다재다능한 그는 재학시절 특히「만도린」을 잘켜 인기가 높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44년 경성제대의학부를 졸업, 51년 서울대의대 조교수, 59년 서울대의대 부교수, 62년 서울대의대 교수가 되었고 68년이래 무려 10년동안(5차연임) 대학병원장직을 맡고 있다. 김박사는 함춘원 출신으로서 최장수 대학병원장으로 기록을 세운 셈이다.
게다가 최신시설 및 장비와 1천56병상을 갖춘 「특수법인 서울대학교병원」의 원장에 임명됐으니 크게 명예스러운 일이다.
초대형 병원신축말고도 김박사의 업적으로 꼽힐만한 것은 많은데 대표적인 것은 국비에 의한 서울대의대 교수 해외파유 연수 계획의 실행이다. 매년 16만「달러」씩을 들여 2년동안 71명의 교수들을 미 「미네소타」 대학을 비롯해서 미국의 다른 대학과 일본「홍콩」 등지에 파견, 3∼6개월 동안 연수케한 것이다.
1956년 가을 나한테 대학병원장직을 인계한 진병호박사는 경성제대의학부 3회(32년)졸업생으로 「오가와」(소천) 외과교실에서 수련, 외과계의 권위자가 되었는데 외과교수 재직중 아깝게 타계했다.
서울대 학생처장 재임때 학생을 위한 장학기금제도를 마련함으로써 학생복지활동에 크게 기여한 심상황박사도 함춘원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35년 경의전 졸업후 일본경도제대의학부 위생학교실에 유학한 심박사는 특히 의복위생을 위주로한 환경위생학을 전공했다.
45년 경의전 위생학 교수로 취임했다가 46년10월 국대안에 의해 국립서울대의대 예방학·위생학교실의 교수가 되었다.
처음에는 위생학교실의 교수였던 심박사는 현규환·김응남씨등과 함께 예방학교실의 최희영·김인달·권이혁씨등과 병존하다가 48년 교실이름을 예방의학으로 개칭, 우리나라 예방의학 발전에 공헌한바 크다.
당시 예방의학 교실에는 심박사 밑에 김인달(전서울대 보건대학원장·현서울대 의대예방의학교수), 조규상(「카톨릭」의대학장·예방의학교수)등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계속)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