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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뿌리내린 교민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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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테헤란=조동국 통신원】한국인들이 유난히 생활력이 강한 사실은 중동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구미의 선진국 사람들이 우리보다는 더 잘 산다지만 그들은 고국에서 자본과 일자리, 또는 기술을 가지고 와 산다.
동남아 또는 기타 후진국의 사람들도 우리처럼 빈손으로 와 그럭저럭 잘 버텨나가지만 「미래」가 없는 하루 하루를 산다.

<월남서 밀려와>
그러나 한국사람들은 맨몸으로 와서도 알차게 저축하며 2∼3년만에 정착, 미래를 설계한다.
월남전쟁이 끝난 뒤 월남에서 동전 한푼 없이 「이란」까지 밀려와 객지생활에서 생긴「굳은 살」하나만으로 요식업·식품업을 개점, 정착한 『억척 한국인』들이 대표적인 예다.
월남기술자로 있다가 75년3월 부인과 2남3녀의 가족을 이끌고 「이란」에 온 신현모씨(52)는 요식업체에서는 가장 성공한 「케이스」.
「탁테타부스」가에 1백31석의 중화요리점 「팩시」 식당을 개점, 연 2천1백만원의 세금을 내는 대식당주가 되었다.
간판은 중화요리지만 한식도 함께 한다.
고객은 한국인 20%, 일본인 30%, 미·독·불·「이란」인 등이 나머지 50%를 차지한다.
소문에는 15만∼20만「달러」 이상을 벌었다기도 하지만 신씨는 『미국이나 「파리」· 「런던」의 한국인 식당보다는 낫다』고만 말한다.
신씨는『미국엘 가보고 실망했다. 그곳의 한국인 식당은 한국사람들만을 상대로 장사하고 있더라』고 말했다.
한국음식위주로 인기를 모으는 「캄보지에·호텔」 및 식당을 경영하는 김세영씨(45)도 3년전 무일푼으로 왔다가 이제는 큰딸을 「파리」에 유학까지 보내며 부인 및 2남l녀의 가족·동생들까지 합심, 알차게 돈을 벌고 있다.
「이란」에는 이밖에 기술자·근로자들에게서 인기를 모으는「유드·호스텔」식당 등 「테헤란」 시내 8개 요식업체, 2백여명의 종업원이 있다.
이들 업체중 경영난으로 문을 닫은 업체는 하나도 없다.
식품업계에서는 된장·고추장·간장 등을 생산하는 극동식품의 박격영씨(43)가 대표 주자.
약20만 「달러」를 벌었다는 박씨는 2개 공장에 현재 현지법인체 등록도 마치고 고정직원만 18명 (한국인4, 「이란」인 8, 「마파스탄」인 6명)을 두고 자동차만도 5대를 운용한다.
월남에서 전신·전화기술자로 7년간 근무하다 공산화직전 「이란」에 온 박씨는 「이란」 항공기 수리창 기술자로 일하다 처음으로 된장·고추장 생산에 손댔다.
2남4녀를 둔 박씨는 『그동안 일부 교민들의 몰이해로 피해도 보았으나 이젠 그런 일이 없어졌다』며 교민회에 대한 각종 지원도 아끼기 않는다.

<간장·두부까지>
현재 공장에는 간장 20t, 고추장 8t, 된장 5t 등의 재고가 있으며 한달 평균 40∼45t을 생산, 「이란」 전역에 공급한다.
박씨는 앞으로 일부 「유럽」지역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지역, 「아프리카」 지역에도 가능하면 생산품을 수출할 꿈에 부풀어 있다. 최근에도 하루 몇 번씩 「스위스」에 있는 고려정에서 주문 독촉전화가 온다고 한다.
이밖에 쌀·채소·조미료·참기름·생선묵·두부·냉면 등 식품을 만들거나 수입해 공급하는 업체도 10여개소나 돼 이제 「이란」에 사는 한국교민들의 식탁은 본국이나 다를 것이 없을 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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