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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러져 가는 모든 인생을 위하여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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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8호 24면

영화를 표현하는 수식어 가운데 가장 매력적인 어휘는 아마도 ‘펠리니적’이라는 말일 것이다. 이탈리아의 네오 리얼리즘 시대를 살았으며 앤서니 퀸과 줄리에타 마시나가 주연을 맡았던 ‘길’을 비롯해 ‘달콤한 인생’과 ‘8과 1/2’ ‘아마르코드’ 등 세기의 걸작을 만들었던 페데리코 펠리니(1920~93) 감독의 독특한 영화세계를 아우르는 말이다.

새 영화 ‘그레이트 뷰티’

그의 영화는 어떤 용어로도 표현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펠리니적’이라고 하되 앞뒤로 ‘위대한’ 정도의 형용사를 하나 더 붙이면 모든 의미가 통하게 된다. 하지만 지금까지 펠리니적인 위대한 영화가 과연 몇 편이나 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2013년작 ‘그레이트 뷰티’는 ‘펠리니적’이라는 수식어의 부활을 뜻하는 작품이 될 것이다. 아니, 조금 흥분해서 얘기하면 이탈리아의 거장 페데리코 펠리니가 다시 살아난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펠리니의 ‘달콤한 인생’과 ‘8과 1/2’을 현대판으로 다시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지난 2월 미국 아카데미가 이 영화에 외국어영화상을 수여하면서 왜 그렇게나 흥분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영화 계보에 있어 순혈적 감성 100퍼센트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어쩌면 딱 한 줄로 요약될 수 있다. 올해로 65세가 된 노(老)작가가 있는데 젭 젬바르델라가 바로 그다. 그는 40년 전 딱 한 권의 소설로 일약 세계적 명사가 됐다. 그는 평생토록 “왜 다음 책을 쓰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아 왔지만 한편으로는 바로 그 점 때문에 로마의 최고 셀레브리티가 됐다. 그는 여전히 화려하다 못해 난잡하고 퇴폐적인 온갖 파티와 그곳에 오는 뭇 여성들을 만나고 다닌다. 젭 바르델라에겐 늘 과거의 기억과 현재적 삶이 한데 묶여 있으며 그가 느끼는 현실 세계의 고통과 아픔은 종종 과거의 사건으로 전이되거나 중첩되곤 한다. 현실과 과거의 경계는 그에게 무의미해진 지 오래다. 그가 단 한 권의 걸작을 쓰고 나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던 과거의 기억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젬바르델라는 말한다. “플로베르가 구하지 못한 답을 어떻게 내가 얻을 수 있겠어?” 그는 또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내가 더 이상의 책을 쓰지 않은 것은) 결국 아름다움의 실체를 찾아 내지 못했을 테니까.”

젬바르델라는 그래서 나태하고, 되도록이면 가볍게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그는 누구에게도 자신의 이즘(ism)과 세상에 대한 태도를 강요하지 않으려고 한다. 삶의 희망은 노동 계급의 강고한 결속 따위의 사회구조적인 명제에서 벗어난 지 오래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인간만이 추구할 수 있는 영적인 기쁨과 사랑, 종교적인 의식 속에서 그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디너 파티의 뒷언저리 쯤에, 자신은 그동안 세상의 변화를 위해 열심히 살아왔다고 주장하는 한 상류층 여성에게 젬바르델라는 뼛속 깊이, 그러나 경쾌하면서도 인간적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가한다. 영화 속 젬바르델라와 영화 밖 소렌티노 감독, 그리고 저 하늘에 있을 펠리니의 음성이 들리는 듯한 명장면이다.

‘그레이트 뷰티’는 단 몇 장의 원고로, 값싼 필설로 형용하기 어려운 영화다. 영화는 종종 영화적일 때 그 미학적 성취감을 뽐낸다. 몸 안의 모든 것(성적인 것을 포함해서)을 다 뿜어낼 듯한 어마어마한 느낌의 영화 속 파티들 모습은 진정으로 인간의 욕망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다. 소렌티노가 거장에 가까운 숨결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레이트 뷰티’는 텍스트의 풍부함만으로도 길이길이, 적어도 2010년대에는 이 정도의 걸작 한 편이 나왔다는 명성을 얻을 만한 작품이다. 인생은 결국 허무한 결말을 지니기 마련인 것이지만 그 공허한 멜로디를 찬양하는 것은 역설의 미학을 이해하는 사람들뿐이다. 삶은 종국적으로 버리고 털어내야 하는 것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아름다운 가치를 더더욱 빛나게 해야 한다는 것.

영화 속 젬바르델라가 우리를 대신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꾸 눈물이 난다. 당신의 지금껏 인생은 달콤했는가. 결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과연 가치가 없는 일이었겠는가. 그 역시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겐 늘 위로와 구원의 행위가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위대한 아름다움’의 행위일 것이다. 스러져 가는 모든 인생을 위해 경배를! 젬바르델라와 그의 여인들에게 축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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