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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괴의 영어 교육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제네바」에 가면 구경거리도 많다.
그 중에 웃기는 게 꼭 하나 있다.
북괴의 대표부인가 하는 건물에는 대문짝 만한 크기의 「플래카드」가 걸려 그 위에 한글로 『위대한 수령 김××원수』 운운이라고 적혀 있는 장면이다.
「제네바」시민들은 영·독·불 3개 국어 이외에는 모른다. 또 「제네바」에 사는 한인이 있다 한들 그건 열 손가락에 꼽힐까 말까 할 것이다.
그러니까 누구를 위한 「플래카드」인지를 통 알 수가 없다. 결국 북괴 당국자의 국제 감각이 그만큼 무딘 탓이라고나 할까.
최근에 들어온 보도에 의하면 북괴는 지금까지 중학에서 외국어로 가르치던 「러시아」어를 영어로 바꿔 친지 몇해가 된다고 한다.
아마 「제네바」의 「플래카드」를 영어로 바꿔 쓰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북한에서는 당이 하라는 일이라면 어떤 억지든 다 통한다.
그러나 발을 한발짝만 바깥 세계로 옮겨도 그런 억지가 통할 리는 없다. 특히 언어는 그렇다.
1945년 「유엔」이 창립되었을 때 영·불「스페인」·「러시아」·중국 등 5개 국어가 공식 용어로 채용되었었다.
그러나 46년의 제1회 총회에서 작업어로 실제로 사용된 것은 영어와 「프랑스」어 뿐이었다. 이어 52년에 「스페인」어, 68년부터 「러시아」어를 함께 쓰게 되었다.
국제어는 국력과도 관계가 있다. 언어학자는 중국어 사용 인구를 대충 7억으로 잡는다. 영어 사용 인구는 이보다 훨씬 적은 2억7천만, 「스페인」어는 1억6천만, 「러시아」어가 1억3천만이다. 그런 중국어도 73년에야 겨우 「유엔」의 실제 통용어가 되었다.
그런가 하면 이와 같은 해에 「아랍」어도 한몫 끼게 됐는데 이 역시 산유국으로서의 위력 탓이었다.
그러자 「아프리카」만이 「유엔」에서 언어를 갖지 못한 유일한 지역이라면서 「케냐」 가 들고 일어서기도 했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이 「스와히리」어는 우리나라의 한글만큼이나 「유엔」의 공용어가 될 가능성은 적다.
북괴도 이제야 겨우 「제네바」의 「플래카드」를 영어로 쓰는 편이 좋겠다고 깨달은 모양이다.
한가지, 북괴에서는 어떤 영어 교육서를 쓰고 있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최근에 나온 「이스라엘」의 영어 교육서 에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빠져 있다.
까닭은 단순하다. 『「베니스」의 상인』에서 유태인을 다룬 「셰익스피어」의 솜씨가 못 마땅한 때문이었다.
이렇게 마땅치 않은 것들을 빼면 북괴에서 가리킬 수 있는 영어 표현이나 작품들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그 대신 배우기는 무척 쉬울 것이다. 배워야 할 단어 수도 적을 테고, 또 판에 박힌 단어나 구호들을 외치는 법만 알면 될 테니 말이다.
물론 그런 영어가 통할 턱이 없다. 더군다나 언어란 어느 것이든 설득과 이해와 타협을 위해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잊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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