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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법조 마피아의 종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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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자유민주주의는 인간이 아닌 법에 대한 복종을 요구한다. 정치철학자 해나 아렌트의 말처럼 우리 일반 시민이 동의하는 법에 대한 지지가 곧 법치의 근간이다. 고대 그리스의 이소노미(법의 지배)가 그랬고, 로마의 시비타스(시민국가) 또한 그렇게 시민의 동의와 승인에서 법의 권위를 찾았다.

 그러나 최근 불거진 법피아(법조 마피아)의 문제는 아직도 우리나라의 권력자들이 수백 년 전의 ‘노예에게 적합한 정부’를 국민에게 강요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법을 시민의 손에서 빼앗아 법피아에게 독점시키고, 이들을 통해 법을 민영화 혹은 사유화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이 문제는 여타의 공직 마피아에 비견할 바가 아니다. 법피아는 모든 정부 마피아에 선행하는 동시에 그 폐해 또한 이들을 능가한다. 그것의 먼 뿌리는 일제의 식민지 사법 체제에 있지만, 그 원형은 박정희 정부가 판사와 검사를 철저한 관료체제 속에서 양성하고 또 관리했음에 있다. 이때부터 법률가들은 ‘법조인’이라는 이름으로 정치권력에 의해 통제되며 필요할 때마다 정치의 수단으로, 혹은 행정의 한 축으로 동원되거나 회유되기도 했다. 법조인들이 권력과 ‘한솥밥 식구’가 되어 강력한 특권을 행사해왔던 것이다.

 우리 사법체제의 고질적 병폐인 전관예우는 이런 권력이 초래하는 한 폐단에 불과하다. 검사들을 법무부는 물론 주요 국가기관에 파견하는 한편 급기야 청와대에까지 진출시켜 도처에서 대통령의 의중을 복제하게끔 만들었다. 최근에는 대법관이나 고법원장과 같은 고위 법관 출신들이 행정부로 나가면서 이런 상황이 더욱 가중된다. 법치 행정의 실현에 기여하기보다는 사법부가 정부의 눈치를 볼 수도 있다는 우려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

 민간 부문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의 법무실이나 사외이사 등에 고위 판·검사 출신의 변호사가 많이 들어가 ‘재조’ 때의 인연과 얽혀들면서 국민 정서와 거리가 있는 결론을 이끌어내곤 한다. 더구나 대형 로펌의 변호사들이 정부 요직에 진출하게 되면서 규제완화와 민영화를 내세우는 현 정부의 정책 과정에서 사적 이해관계가 통용될 수 있는 위험까지도 안고 있다. 법조인들이 정부 곳곳에서 활약하고 주요 로펌들의 매출은 나날이 늘어감에도 우리의 법치가 퇴행하고 있음은 이 때문이다.

 실제 이런 모습은 외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미국이나 유럽, 나아가 일본조차도 법관은 종신제로 하는 것이 기본이다. 사법부가 퇴직 법관을 통해 외부와 유착되는 길을 막아버린 것이다. 이들 나라에서도 법률가들이 국가나 사회 도처에서 활약하지만 그것은 판·검사 출신이기 때문이 아니라 법률전문가로서의 능력을 인정받기에 그러하다. 더러 발생하는 특혜성 처우는 개인적 비리에 그친다.

 우리의 경우 이런 유착은 이미 법조계의 불문율로 구조화돼 있다. 그래서 우리 법조인은 언제나 그의 현직 또는 전직과의 연관 속에서 존재한다. 사법 과정에서의 그의 권력이나 영향력을 통해 법을 조작하고 사유화하는 통로로만 인식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법망을 교묘히 피해가는 각종 거악(巨惡)들의 존재와 사회정의의 왜곡으로 드러난다. 세월호 사건과 각종 권력형 부정·비리를 초래한 관피아들의 무책임성이 법과 정의를 조롱하고 있음은 이 법피아의 존재와 무관치 않다고 본다. 노동자의 권리인 파업이 졸지에 불법으로 규정되어 엄청난 손해배상책임으로 이어지거나 대기업의 횡포에 항의하며 자살한 노동자의 시신을 경찰이 강권으로 가져가도 우리 시민은 그저 무기력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 역시 그들의 담합된 법 조작에 연유한다.

 그래서 법피아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 그것은 법의 지배라는 헌법 명령을 권력이나 돈으로 오염된 법에 의한 지배로 대체하기 때문이다. 법치는 국민 다수의 의사가 법을 구성하고 이를 통해 권력을 통제할 것을 요구하지만, 법피아들은 이를 정반대로 왜곡하기 때문에 위험하다. 권력 의지를 법의 형식으로 포장하고 이를 통해 국민 다수를 압박하는 경우도 흔하다. 그러면서도 법피아들은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법의 이름으로 은폐하고 엄폐한다. 지배하는 주체를 익명 처리함으로써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지배자 없는 지배’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에 최근 법피아에 대한 국민적 비판은 오랫동안 유보되었던 필연이다. 국민이 권력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법이, 권력이 국민을 통제하는 그들의 법으로 사유화되어 버린 현실에 대한 우리 모두의 분노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한 번 더 해나 아렌트를 인용하자. “권력을 생성시켰던 집단이 사라지는 순간에 ‘그의 권력’도 소멸한다.” 법을 승인한 시민을 법의 노예로 몰아넣는 순간 ‘그의 권력’도 같이 해체되어 버림은 자명한 역사적 이치다. 현 정부가 법피아의 강고한 아성을 해체해야 할 필요는 그래서 더욱 절실해진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