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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세월이 간다고 '세월호' 가 망각돼선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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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희중
대주교·천주교
광주대교구 교구장

“실종자 시신이 인양될 때 처음에는 제 자식이 아니기를 바랐어요. 그런데 지금은 빨리 시신이라도 제 품에 돌아오면 행복하겠어요!”

 누가 이 꽃다운 자식들을 저 바닷속 깊은 곳에 가둬놓고 아무런 힘도 쓸 수 없게 만들었는지 생각할수록 무기력감과 분노의 안타까움이 솟구쳐 오른다. 참사 초기에 시신이 인양되면 내 자식이 아니길 바랐지만 지금은 그 시신이 내 자식이길 바라는 부모의 참담한 심정보다 더 가슴 아픈 말을 들을 수 있을까?

 새해 2월,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참사로 꽃다운 젊은이들의 소중한 생명을 잃어버렸던 악몽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이 아픔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진도 앞바다에서 일어난 세월호 침몰이라는 대참사 앞에서 온 국민이 크나큰 충격과 더불어 집단적인 슬픔의 공황상태에 빠져 있다.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에 따라 아이들은 죽음을 목전에 둔 위기상황에서도 탈출을 시도하지 않고 가만히 구조를 기다렸다. 그러나 자신들을 구조해 줄 것이라는 간절한 믿음으로 기다렸던 아이들에게 우리나라의 어른들은 영원히 씻어버릴 수 없는 불신의 큰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의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처사와 사고 당시 인명 구조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해경과 정부 관계자들의 기본적 상식의 부재로 300여 명의 귀중한 생명을 깊은 바다에 묻어버리는 비운(悲運)의 대참사를 국민은 온몸으로 겪고 있다.

 필자는 지금의 안타까운 현실에서 우리의 문화·교육·사회구조의 전반적·근원적인 문제에 대해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세월호가 침몰하면서 국민은 ‘이것이 국가인가’라며 대한민국이 침몰했다고까지 말한다. 침몰하는 대한민국을 새롭게 재건해 나가기 위해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하는가? 우리 사회는 자본의 천문학적인 축적을 삶의 목표로 삼고 제동장치가 풀려버린 자동차처럼 물질의 세계로 치닫고 있다. 그리고 천부적인 인간 존엄성과 상호존중의 배려로 상부상조하며 살아야 할 사회공동선(善)에 연대감을 공유하지 못함을 보여주고 있다.

 학교 교육 역시 대기업 취업을 위한 입시에 치중하는 지식교육으로 인해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사고, 개인의 가치, 인격 존중의 민주주의적 소통과 인성교육이 많이 배제돼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이 참사는 ‘인간애(人間愛)’가 빠진 이윤추구 지상주의가 낳은 결과의 한 단면이라고 생각한다. 보신주의(保身主義)와 상명하복(上命下服)의 관행에 길들여져 있는 지나친 관료주의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사람이 빠진 법과 제도의 우상화는 예수님 말씀처럼 결국 율법주의에 빠지게 된다. 곧 이상적 제도와 이상적 법이 곧 이상적 사회를 자동적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그 제도와 법의 근원적인 정신이 의식화돼 있지 않다면 별 의미가 없지 않을까?

 결국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면 때로는 그러한 법과 제도와 조직마저도 자신의 비리를 합법화시킬 수 있는 지렛대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칼은 누가 쓰느냐에 따라 사람을 죽이는 흉기가 될 수도, 생명을 살리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칼을 만드는 것은 경제적 이윤을 추구하는 일이지만 결국 칼을 제대로 쓰는 것은 사람의 품성에 달려 있는 문제다.

 가톨릭교회는 생명을 강력하게 수호하는 입장을 강조해 왔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는 말이 꼭 절도죄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폭력과 자살, 그리고 낙태와 같은 생명 경시는 결국 자기 이외의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생명경시 문화를 낳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죽음의 문화는 인간을 경제적 동물로 비하시켜 생존을 위한 경쟁의 도구로 전락시키게 된다. 우리나라는 경제의 성장 속도와는 달리 삶의 질과 의식 성장은 이에 비례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인간에 대한 존중감, 사회적 소외 계층과 장애인에 대한 배려 없이는 선진국 대열에 설 수 없다. 능력 있는 한 사람이 백 보 앞서 가는 사회가 아니라 백 사람이 일 보를 함께 가는 사회가 선행돼야 할 것이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다’라고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는 말하고 있다. 현재의 눈을 통해 과거를 볼 수 있고 현재는 바로 우리의 미래를 비춰주는 거울이 된다. 우리 사회의 깊은 내면에 잠재돼 있는 고질적 물질만능주의와 인간경시주의 사고의 대전환이 필요한 때다. 결국 삶의 가치관과 의식, 사고방식이 바뀌어야 할 것이다. 이번 참사의 고통은 잊히는 것으로 극복돼서는 안 된다. 정치·경제·사회적인 부조화의 근거는 철저히 검증하고 규명돼야 한다.

 우리는 대형 참사나 비리가 발생해도 그 순간 일시적으로 분노하고 쉽게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정리하지 않은 채 묻어버리는 우리 내면의 뿌리 깊은 이기적 무관심으로 인해 부조리한 과거를 청산하지 못하는 현실이 다시는 되풀이돼선 안 될 것이다. 세월호 사건을 우리 삶의 근원적이고도 전반적인 위기를 재조명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래서 미래의 희망을 지금 이 자리에서 이뤄나가는 것이 우리 모두의 과제이기도 하다.

김희중 대주교·천주교 광주대교구 교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