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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나이더 대사-TBC·TV 고별 회견 내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처음 무슨 직책부터 관리 생활을 시작했는가?
「스나이더」=1949년 국무성에서 북한 관계 일할 사람을 찾을 때 흥미가 생겨 시작했다. 50년 한국 전쟁이 났을 때 마침 나밖에 없어서 한국 통이 됐다. 따라서 관리 생활이 한국에서 시작해서 한국에서 끝날지 모르겠다.
-가장 어려운 때에 한국에 근무하며 고충이 많았다고 보는데?
「스나이더」=시련이라기보다는 일해 볼만한 때였고 댓가를 치른 교훈이었다고 생각한다. 직무를 수행하면서 대사의 역할은 양쪽을 맺어주는 것이란 것을 알았다.
-재직 중 가장 어려웠던 일은….
「스나이더」=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참 어려운 때가 많았다.
8·18 도끼 만행이 터져서 휴가 중 서둘러 돌아와야 했고 소위 「코리아게이트」로 불리는 문제로 정말 어려움에 처했다. 이 사건은 가장 불미스럽고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나 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한다.
-한국과 미국 같은 오랜 친구 사이에 어째서 「코리아게이트」 같은 사건이 터졌을까? 한국 측의 잘못인가?
「스나이더」=어느 한쪽에 책임을 지울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50년부터 한국을 보아왔는데 오늘의 한국은 커다란 변모를 해왔다. 미국 역시 사회의 가치관이 바뀌었고 월남전·「워터게이트」 등 2개의 위기를 넘겼다.
나는 우리들이 이러한 변화와 새로운 환경에 재빨리 적응치 못했던 것은 미래에 대한 경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미국은 한국 민이 생각하는 것보다 한국이 더 발전했다고 보아 더 무거운 짐을 져 줄 것을 바라고 한국은 가능한 한 우리에게 의지하려 한다. 이제 한국은 성숙한 국가로 발전한 만큼 누구는 주고 누구는 받기만 하는 종래의 관계가 아니라 호혜적인 관계로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 사회의 결함 때문에 한미 관계가 원활치 못했던 것은 아닐까?
「스나이더」=그렇지 않다. 미국이 도덕적 파멸에 떨어졌다고 하는데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
-박동선 사건 때 대사의 입장을 「워싱턴」에서 어느 정도 이해해 주던가?
「스나이더」=꽤 이해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사건의 단면만을 본다면 절대적인 옳고 그름은 없었다. 「워싱턴」의 지시는 대부분 타당성이 있었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반대를 하기도 했다.
-한국 정부에서도 미 대사 입장을 잘 이해했는지?
「스나이더」=한국 정부에서는 비난을 퍼부었다고 생각한다 (웃음). 때로는 내가 말하는 것을 이해했지만 때로는 너무 조심했기 때문에 내가 조급했던 적이 있었다.
-박동선 사건은 마무리 됐다고 생각하는가?
「스나이더」=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근본적으로 마무리 됐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한 4년 동안 있으면서 한국·한국인에 대해서 어떻게 느꼈는가?
「스나이더」=나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깊이 탄복하면서 이 나라를 떠난다. 한국인의 용기와 때로는 좀 지나치기도 했지만 도전의 자세 그리고 조금은 조급한 듯한 성품이 이 나라에 커다란 성장을 이룩한 것에 감탄하고 있다. 더욱 더 소중히 간직해야 될 것이 많고 국내문제들에 있어서 관용과 사회 정의가 더 확보돼야 하지만 북에 매우 위험한 적과 용감하게 대적하고 있다.
-귀국 후의 계획은?
「스나이더」=가을에는 「하버드」에 갈 예정이고 그 이후는 아직 불확실하다. 해보고 싶은 직책이 주어진다면 외교관 생활을 계속하게 될지도 모르고 아니면 연구 생활을 하거나 기업 경영 자문 등 공직 생활을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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