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황정근의 시대공감] 선거와 엘리트의 어원이 같은 이유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77호 31면

선거(election)와 엘리트(elite)의 어원이 같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선거는 정치 엘리트를 뽑아서 먹고살기 바쁜 국민을 대신해 나랏일을 잘 처리해 달라고 위임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신한다’는 동사다. 국민을 대표하기 때문에 ‘뛰어난 사람’(elite)을 뽑아야 한다. 뛰어나다는 것은 결국 민심을 읽을 줄 알고 국가 경영능력을 갖춘 것을 의미한다. 선거는 지도자(guardians)를 감시(guard)하는 제도이기도 하다. 나를 대신해 일해 줄 사람을 뽑는 일, 지금까지 한 일을 평가하는 일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장 투표율이 걱정이다. 그 전에도 투표율은 낮았다. 2002년 48.9%, 2006년 51.6%, 2010년 54.5%였다. 유권자의 무관심이 만들어낸, 초라한 민주주의 성적표다.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이번에는 달라져야 한다. 선거 불참은 민주시민의 미덕이 아니다. 선거 참여도가 절반 수준에 머문다면, 앞으로 투표하겠다고 신청한 사람에게만 투표권을 주는 ‘신청제’로 가자는 논의가 나올 수도 있다. 선거에 불참하면 벌금을 물리는 외국법을 수입해야 할지도 모른다.

선거는 국민이 정치에 참여하는 강력한 수단이다. 원래 ‘공화국’이란 법과 공공선(公共善)에 기반을 두고 주권자인 시민들이 만들어낸 정치공동체다. 시민의 정치참여는 ‘공화시민’의 주요 미덕이다. 투표는 국민의 의무이자 국민주권의 상징이다.

투표에 적극 참여해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선거 한 번 잘 치르면 나라가 새로워지고 지역이 바뀐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선거는 크든 작든 그 여정(旅程)의 끝은 바로 ‘대한민국의 변화’다. 선거는 변화에 대한 약속이고, 실천이다. 투표장에 가지 않고선 조그마한 변화도 가져올 수 없다. 흔히 선거는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으로 유권자의 마음을 사는 것이라 한다. 투표에 참여해야 미래의 비전과 희망을 찾아 나설 수 있다.

우리는 이제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선거에 임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1995년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달성한 국가의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다. 97년, 2007년 두 차례에 걸쳐 대립적 세력 사이에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뤄냄으로써 민주주의 공고화 기준(two-turnover test)을 통과했다. ‘1987년 헌법’ 성립 후 20년 만에 선진형 민주주의에 진입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2012년 발표한 민주주의지수 평가에서 167개국 중 20위를 차지해 ‘완전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됐다. 아시아에선 일본(23위)·대만(35위)보다 앞선다. 이로써 우리는 국민국가 건설, 시장경제 발전, 민주정치 확립이라는 근대화 3대 목표를 달성했다. 대한민국은 곳곳에 도사린 단점에도 불구하고 장점이 더 많은 나라다. 선거 참여는 한국 민주주의의 심화와 공고화에 기여하는 길이다.

우리나라의 투·개표 등 선거관리 시스템은 세계적인 자랑거리다. 투표 마감 직후부터 전자개표기로 바로 집계되는 투표 결과는 오류가 거의 없다. 그런 노하우를 인정받아 우리나라는 지난해 창립된 세계선거기관협의회(A-WEB)의 초대 의장국이 됐다. 특히 이번에 처음 실시된 사전투표제는 그 유례를 찾기 어렵다. 정보통신기술(ICT) 선진국인 대한민국이기에 가능하다. 하지만 투표에 불참하면 첨단 시스템도 무용지물이고, 예산은 예산대로 낭비다.

그 다음은 유권자의 선구안이 중요하다. 후보자를 판단하는 유권자의 명품 선구안이 선거를 변화의 성전(聖戰)으로 이끌 수 있다. 선거에서 지도자 잘못 뽑으면 재앙이다. 선거에 참여하는 것만큼이나 후보자를 제대로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선거의 핵심이다.

자질과 능력, 도덕성과 정의감을 지닌 훌륭한 지도자를 선택해야 국민이 행복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나라와 지역을 만들 수 있다. 결국 일류 국가와 일류 지도자는 일류 국민이 만든다. 제대로 된 국민이 제대로 된 정치엘리트를 선택해야, 그들이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든다. 제대로 된 선택을 게을리하고서 나중에 후회하고 욕하는 것은 비겁하다.

이제라도 선거공보를 꼼꼼히 살펴보자. 4일엔 꼭 투표소로 가자. 거기에서 악덕 전과자, 세금 체납자, 허황된 엉터리 공약을 하는 후보를 과감히 솎아내야 한다. 설령 뽑을 사람이 없다면 차선을 택하자. 투표장에 가야 하는 이유는 이제 분명해졌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