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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산한 학교 터의 「빌딩」 신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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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근자 서울시의 인구 정책은 「소산」을 지향하는 것인지, 「과밀」을 부채질하는 것인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인구의 도심 흡수 요인을 제거하겠다고 중·고교와 사설 학원 등을 외곽지로 내보내 놓고는 그 자리에 대부분 다시「매머드·빌딩」·「호텔」·「아파트」등 초고층 건물을 신축토록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인구 집중과 교통 혼잡의 유발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대규모 기업의 사무실과 「호텔」등 은 중·고교와는 비교가 안될 만큼 누적적 집중 효과를 낳게 마련이다.
학교 시설은 학생들의 등·하교 때만 붐비지만, 대기업의 사무실용「빌딩」이나「호텔」은 오늘날 하루종일 국내외 각 지역과의 기술·상품·「아이디어」의 교류가 이뤄지는 문물의 집산지로서의 복합적 기능을 갖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강북 도심의 학교와 사설 학원을 변두리로 이전시키고 거기에 고층 건물이 들어서도록 하는 시 당국의 처사는 삵괭이 몰아내고 호랑이 불러들이는 것과 다름없다 할 것이다.
도시 과밀을 해소하는데는 밀집지구 안의 과밀요인을 솎아내는 작업 못지 않게 새로운 인구흡인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철저한 방어조치를 강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과밀 요인의 배출로 생긴 용지를 도시 계획의 사업주체인 시 당국이 취득하여 공원·선지·도서관 등 기본적 도시 공간으로 활용하여 밀집 지구의 밀도를 낮추어 가는 것이 당연한 순서다. 이러한 과정이 연속적으로 반복되는 가운데 도시 전체의 기능 분산과 환경 정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일관된 정책의 확립없이 눈앞에 닥친 임기응변식 애로 타개와 세수 증대의 필요 때문에 성급한 판단을 하게 된다면 이에 따른 시행착오는 얼마안가 다시 도시계획을 해야하는 등 더 많은 시민의 세금부 담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까지도 서울시의 토지 관리는 장기적 계획보다 오히려 당장 급한 재정수입을 위해 공공용지를 헐값에 팔아치웠다가 새로운 필요에 의해 그 불하한 땅을 다시 비싼 값으로 사들인다든지, 공원·도로개설 등 도시 계획에 지장을 받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더우기 정부에서조차 공익적 사용을 위해 토지에 대한 공개념의 확대를 시도하고, 또한 수도 서울의 과밀 방지를 목적으로 종합 청사의 이전까지 논의되고 있는 이 시점이 아닌가.
이런 한편에서 서울시가 기껏 강남으로 이전시킨 학교 부지를 개인에게 넘겨 상점용 고층건물을 짓게 함으로써 오히려 인구의 도심 집중을 선도케 한다는 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용납될 수 없다.
인구 분산이나 도시 정비 계획은 어느 특정 지역 안의 사업이나 경제적 타당성을 넘어 상위 계획인 도시 전체의 균형 발전과 조화의 지점에서 추진돼야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고식적인 방법으로 인구 집중만 줄여보겠다는 생각은 이율배반을 면치 못할 뿐만 아니라 과밀 해소라는 명제를 끝내 실현할 수도 없을 것이다.
서울의 인구 분산 시책이 적어도 국가적 차원에서 요청되는 과제라면 보다 일관성 있고 장기적 안목에서 추진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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