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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를 흔든 시 한 줄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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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동영상은 joongang.co.kr [최효정 기자]

당나라 시인 하지장(賀知章)은 성품이 넉넉한 풍류객이었다. 만년에 벼슬을 버리고 신선의 도를 닦은 이로 시서(詩書)에 능했다. 담론이 좋아 그를 좋아하는 이들이 청담풍류(淸談風流)라 불렀다. ‘회향우서’는 그의 취향 을 보여주는 명시다.

 젊어서부터 이 시를 외웠지만 그때는 별 감흥이 없었다. 연전에 하지장의 고향인 중국 소흥에 가서 그의 옛집과 사당을 보니 이 시가 절로 떠올랐다. 구수한 고향 사투리는 여전한데 머리털만 하얗게 변했다는 무상한 세월 얘기가 꼭 내 처지와 같았다. 두 번째 연은 이렇게 이어진다. “고향 떠난 세월 오래도 되어/ 지금에 오니 그때 사람 절반은 떠났네/ 문밖의 경(鏡)호수만 그대로 넘실대는데/ 봄바람에도 옛날의 물결 변하지 않았구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다’는 옛말이 이렇게 현실감 있게 살아나는 시가 어디에 또 있을까. 흘러간 세월에 알던 사람 절반은 떠났고, 의구한 산천이듯 경호라는 호수는 넘실대고, 어렸을 때 봄바람에 출렁이던 그 물결은 그대로라니. 1000년 전에 벌써 내 마음을 시로 쓴 그의 동감에 놀랄 뿐. 늙어버린 우리네 인생에, 이렇게 절절한 마음을 일으켜주는 시가 흔할 것인가. 그래서 외우고 때로 암송하는 시가 바로 ‘회향우서’다.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