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2)-학생이 넘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지방대학은 북새통이다. 학생만 한껏 늘려놓아 초만원이 됐다. 강의실이 모자라고 교수가 부족하다. 도서관엔 들어설 자리가 없고 참고도서나 실험실습 교재가 턱없이 모자란다. 교수 회의실마저 강의실로 내놓고 학술강연회를 운동장에서 듣는다. 2부제, 3부제 수업을 하면서 비가 오면 피할 곳이 없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학생들이―.

<한계점에 도달한 시설>
『서울대가 아니면 구태여 서울에서 대학 다닐 필요가 없다』며 지방대학으로 몰려드는 학생들은 해마다 많아지기만 한다. 서울에서 사립대에 다닐 경우 국립의 3배 가까운 등록금과 비싼 하숙비 감당이 어려워 지방대학을 향한 학생 대열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입학 경쟁률이 높아지고 「커트라인」도 서울대를 제의한 서울의 어떤 대학에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할 정도다. 70년대에 들면서 시작된 지방대학 우선의 학생 정원 증원이 78년에는 l백% 지방에만 늘려 학생수가 지방·서울이 같게 됐고 내년부터는 당장 지방대학이 앞서게 됐다.
이같이 고무풍선처럼 늘어나는 지방대학 학생들의 팽배한 학구열이 발붙이고 뿌리내릴 교수와 시설 부족은 금년에 들면서 한계 상황까지 다다랐다. 『연구·교육 이전에 수용이 문제』라는 정식헌 교수(경상대 영문학)는 지방대학의 시설 부족이 이제 극에 달했다고 말한다. 지난 48년 1개 학과정원 80명으로 개교한 경상대는 30년만에 23개 학과학생 2천9백60명으로 학생은 무려 37배가 늘었건만 교지 3만4천평은 그대로며 시설도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캠퍼스」 인구밀도가 37배로 늘어난 셈이다. 등교시간이면 교문은 터질 듯 하고 귀한 손님 초청해서 학술강연회를 해도 장소는 운동장이다. 문교부의 대학시설 기준령에 비쳐본 보유 시설은 29%, 교지는 20·5%다.
『서울의 국민학교 콩나물 교실이 부러울 정도입니다. 2부제가 아니라 8부제 수업을 해야할 형편이 됐습니다.』 이희진 교수 (전북대·수학)의 푸념이다. 전북대 문리대에서는 30개 「클래스」에 겨우 강의실 4개. 학생들은 운동장 한구석에서 강의실이 비기를 기다려야 한다.
지방대학에 점심시간이 없다는 것은 이제 상식처럼 되었다. 부산대가 그렇고 전북대·충남대·공주사대 모두가 그렇다. 강의실을 점심시간에도 놀릴 수 없다는 다급한 형편이다. 충북대에선 강의실이 모자라 「세미나」실을 쓰고 교수회의실도 강의실이 돼 버렸다. 무슨 회의라도 있는 날이면 바뀐 강의실을 못 찾아 학생들은 우왕좌왕해 시간을 다 보내고 만다.

<밤엔 강의실이 열람석>
도서관 열람석이 모자라서 충남대는 강의실을 밤 10시까지 불을 켜고 열람석 대용으로 쓴다. 『밤늦도록 불편한 책걸상으로 책을 읽고 있는 학생들을 볼 땐 측은한 생각까지 든다』는 서명원 총장은 학생들에게 대덕연구단지에 건설중인 새「캠퍼스」가 완공될 80년대를 기다려 달라는 말 밖에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장서를 보면 더 할 말이 없다. 서울대가 지난 3월 도서관장서 1백만권 돌파를 축하한 일이 있지만 학생 수가 서울대의 절반에 가까운 충남대 도서관장서는 8만권이다. 어느 대학이나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나마 장서 중에 학생들이 이용할 수 있는 참고도서는 거의 없다. 시설기준에 맞추느라 한꺼번에 사들인 「고물」이 아니면 싸구려 전집류가 대부분이다. 『도대체 우리 도서관에는 필요한 책이 없는 곳입니다. 모두가 박물관에나 가져다 놓아야 할 책들이고 찾는 책은 언제나 없읍니다』라는 오병기군(전남대 경영과 3)의 말이 사정을 단적으로 설명해 준다.
실험실습 교재를 들여다보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우선 지방대학 육성의 명분으로도 되고 있는 특성화 공대조차도 학생만 늘렸지 실험실습 교재를 구비 못하고 교수를 확보 못했다. 정부는 올해 중화학공업 인력 양성을 위해 전남대를 화학공학, 부산대를 기계공학, 충남대를 공업 교육식으로 특성화한다고 4백명, 8백80명, 9백50명씩 학생을 뽑아놓았다. 그런데 화공에 전자분석기 하나 없고 기계과에 선반이 모자라고 공업교육과 학생이 「컴퓨터」한번 만져보기 어렵다.

<참고 도서 태반이 「고물」>
부산대 공대는 질은 제쳐놓고 종수로도 기준의 28%, 기재만 갖춰 놓고 특성화 공대 시늉을 내고 있다. 『학생들이 실험실습을 하고 있는 것인지 어떤지는 학장에게 물어보셔야 합니다』라는 짜증스런 실습장 책임자의 말속에서 교수들의 고민을 짐작 할 만하다. 이런 형편에 교양 국어나 철학 강의를 없애고 기계공학만 가르친다는 학교측의 태도는 답답할 지경이다.
교수 난은 교수의 강의 부담을 견디기 어려운 곳까지 몰아가고 있다. 심한 경우 부산대 기계공대의 한 교수는 1주일에 22시간의 강의를 해낸다. 법정시간 (8시간)의 2·5배를 하는 셈이다. 질을 따지기가 힘든다.
숭전대 대전「캠퍼스」에선 지역사회개발학과 1백10명의 학생에 전임교수 1명, 나머지를 모두 시간강사로 때운다.
신현욱군(숭전대·영문과 3)의 『지방대학 육성한다고 교수도 시설도 없는데 학생만 마구 늘리고 있습니다. 받아들일 준비부터 시켰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속에서 팽창하는 지방대학 속에 응어리진 학생들의 불만을 읽을 수 있다. 새바람 속에 찾아드는 젊은이들의 의욕에 보답할 시설, 교수의 확보는 이제 국가적 차원에서 진지하게 다루어져야 할 때가 왔다. 모처럼 불어온 이 젊은 힘을 학문의 지방분권 정착의 「에너지」로 활용하느냐 못하느냐는 오늘의 지방대학이 안고 있는 숙제다. 【권순용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